오랜 세월 동안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보니 서울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면 지방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까지 가야만 했다.
서울까지 몇 시간 올라가서 서울역에서 전개되는 서울의 느낌은, 해외 출장 많이 다닐 때에 일본에 도착해서 시내에 나오는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방에서 기차 타고 서울에 가는 것이나 지방 공항에서 곧바로 일본 동경 가는 것이나, 처음에는 국내와 해외의 차이였는데 길을 나서고 여행을 하다가 보면 길들여진 탓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미팅을 할 때마다 매번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내가 주관하여 만나는 모임이나 미팅은 가급적 서울역에서 가까운 남대문시장, 회현역이나 충무로 쪽의 식당 혹은 후암동 쪽의 식당을 선정하곤 하였다.
시간도 여유 있게 남산 둘레길을 한두 시간 산책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식당까지 걸어가면 좋을 코스로 정하였다.
그런데 서울 사는, 특히 강남에 사는 친구로부터 서울역까지는 너무 멀다고 강남에서 만나면 좋겠는데 하는 소리를 들으니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사람의 입장은 깨닫지 못하구나 싶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산에 올라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만나자고 남산 모임도 만들었는데 세월 따라 각자 생각이 다름의 가지가 더 커지고 있음을 본다. 남산의 백범 광장은 만남의 장소로서 일 년에 몇 번씩은 가던 때가 있었는데, 나도 지방 공단에서 근무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최근에 들어서 조금 뜸해졌다.
남산 둘레길은 안내도 잘 되어 있고 여러 곳에서 진입할 수 있으며 숲속으로 걷는 길도 좋고, 굳이 남산타워 전망대( N 서울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남산 광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와 인왕산을 마주 보면서 남산에 여행 오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계절 따라 남산의 정취를 느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만 남산 길을 걸으러 와도 일 년에 네 번이라 100번이 되려면 25년이 걸리겠는데 좋은 곳이라면 100번은 가야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 달 무슨 달 낮과 같이 밝은 달
어디 어디 비추나 우리 동네 비추지
달 달 무슨 달 거울 같은 보름달
무엇무엇 비추나 우리 얼굴 비추지
윤석중 작사 동요 달 달 무슨 달하고 어릴 때 많이 부른 노래고 커서도 흥얼거리며 보름달이 떠오르면 떠오르던 가사다.
남산 위에도 뜨고 동산 위에도 뜨고 앞산 위에도 뜨고 보름달이 떠올라서 산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달이 도망가기 전에 조심조심 산에 올라가면 그 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밤에 산으로 올라갔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애국가 2절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하고 시작한다.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전쟁을 거치면서 소나무들은 베어지고, 나중에 아카시아 등의 잡목을 심어 산의 경관을 많이 해쳤다.
한편으로는 남산 위 저 소나무가 바로 경주시 남산의 소나무라고도 하고 문경새재 능선 큰 바위 틈에 자생하는 소나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을 말하기도 하고, ‘동네 앞에 있는 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남산은 옛날 큰 도시의 '앞산’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서울은 물론이고, 경주, 충주, 개성에도 남산이 있다.
이러한 다중적인 의미 때문에 남산이라 불리는 산은 전국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서울 남산과 경주 남산이다. 서울 남산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 중 하나이며, 경주 남산 또한 신라시대 불교의 중심지로서 경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이다.
서울 남산은 높이가 265.2m.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이었다. 도성(都城)도 북악산 · 낙산 · 인왕산 · 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
남산둘레길 안내도 / 서울시
남산의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목멱 대왕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 신사라고 불리고 이때부터 인경산은 주로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렸다. 1925년까지 지금의 팔각정이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황국사관 전파를 위해 남산에 조선신궁(神宮)을 지으면서 지금의 인왕산 국사당 자리로 강제로 옮겨졌다.
남산은 현세에 와서도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 주기도 했지만, 중앙정보부 수사실이 저기 있었다고 남산 길을 걷는 사람들이 고문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남산 예장공원으로 새로 단장된 터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었으며 광복 후에는 중앙정보부 6국이 있었다. 서울의 중앙이라 조선시대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많지만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들도 함께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의 남산 공원은 수많은 한국 역사를 흘려보내고, 숲과 계절의 운치에 따라 고즈넉하다.
남산타워 전망대 광장은 한국에 여행 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가 되었지만 그게 되려 우리에게는 수많은 모습의 다양한 외국인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만날 장소를 정하기가 마땅찮을 때 남산이 좋다지만 기실 남산은 미팅하기에 멋진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