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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밥 한번 먹고 커피 한잔 한담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5년01월22일 14시4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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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서 나가니 이미 와 있었고 식사 메뉴를 미리 주문해놓았다고 했다. 저번에 그가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산다고 했는데 기어코 그가 밥값을 낸다.  만나기 전에 통화할 때 그가 최근에 비트코인으로 엄청난 돈을 번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막상 식사를 같이 하면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주문한 식사 내용을 보니 상당히 많이 시켜놓았고 일부는 다 먹지도 못하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도 그는 식사 내내 흐뭇한 표정이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비트코인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라 비록 장부가격이지만 엄청난 손실에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대비하여 두 배 이상이나 올랐다.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가격이 폭락하고 있을 때에도 손실을 감안하고  주기적으로 계속 사 모았으니 상당한 수익이 난듯하다.

 

반면에, 코인 하다가 거지 된 사람들도 많다. 급하게 오르내리는 알트 코인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말아 먹었는데 이번에 만난 그와 같이 비트코인만으로 끝까지 버틴 사람은 상당한 이익을 본 듯하다.

'투자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의 비관론을 무시할 수 있느냐. 모두가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만한 담력이 없다'라고 했던 피터 린치의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물론 매수한 종목에 따라서는 끝까지 버티다가 완전하게 망한 사람도 있었고 그것으로 인한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나도 비트코인을 조금 사보곤 했는데 일찌감치 다 정리하였다. 차라리 팔지 말고 그냥 두었으면 제법 돈이  되었을 건데, 수시로 폭락을 하면서 구름 잡는 듯한 코인에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아서 손을 뗐다.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가서 최근에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을 이야기 듣는다. 그와 만나 식사를 같이 한 지가 일 년 만인데, 요즘은 한번 만나고 해가 몇 번씩 바뀌는 것조차  예사인 듯하고 어쩌다가 밥이라도 같이 먹자 하면 벌써 일 년 이상 후딱 지나갔다.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에 안부 전화 통화한 사람의 통화 전 기록 시간이 일 년이 지난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통화한 사람들도 그런데 통화하지 않은 사람은 벌써 몇 년이 지나 간지도 모른다.

 

별일 없어도 시간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달력 넘어가는 소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던가. 송골매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거북이의 '한동안 뜸 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라고 부르는 옛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옛 어르신들 말씀처럼 앞날이 구만리로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젊은 시절을 지나오면서 오히려 그때에 더 모든 것이 급하였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야 했는지. 실속도 없이 여하튼 바쁘게 살아온 시절이었다. 

 

'조바심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워런 버핏이 이야기했는데, 좋은 의미로 적극적이라 하지만 성급하게 결정한 많은 것들은 실수투성이로 지나갔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실수라도 하는 경험이 아픔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살이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다. 현대인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하는데 그 조급증이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 우연히 조카를 만나 보니 이제 군대 제대하고 이십 대인데 세상 근심을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었다. "어깨 펴라! 네 나이에 무엇을 하더라도,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기죽지 말고 세상을 살아가라"라고 훈수를 둬 줬는데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

 

실상 이십 대 중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고민이 아주 많은 시대다. 나이 든 사람들이 쉽게 내뱉듯이 "너 때가 좋은 시절이라"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앞이 캄캄할 때가 많다. 취직하기도 어렵고, 주변 환경도 자신의 실력도 잘 따라주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인생에 회의를 가장 많이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나가던 리즈 시절이 있고 대부분은 그 사람의 황금시대와 내가 어렵던 시절과 비교하여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성현들의 인생살이 교훈이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내가 잘 나갈 때의 모습에 스트레스받았는지 나를 경쟁상대로 삼았던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그들과의 만남의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특히 내가 공부를 잘했다고 했던 초등, 중학교 동기들이 심했다. 지금은, 그들의 자리가 내보다 못하거나 못 사는 사람도 별로 없다. 

 

 


 

 

예전에 어떤 동창은 나를 "꼭 만나고 싶은데 만날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라고 한다는 소리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출세한 모습을 내게 자랑을 해야 되는데라는 의미였다. 내가 알던 그는 중학교 동기지만 공부도 별로였고 집안도 가난하여 고등학교도 기억에 없다. 나중에 어느 학교에 재수하고 갔는지 잘 모르고 그 뒤로 어떻게 학교는 제대로 다녔는지도 연락이 없었는데, 삼십 년이나 더 지나서 소식을 들으니 부산에서 큰 사업체를 하며 라이온스 클럽 회장직을 맡았고 박사학위에 대학교 강의까지 나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를 만나지 못한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무진장 노력하고 발전하였으리라 그걸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얼마 전에는 예전에 알던 지인으로부터 오래간만에 연락이 와서 식사같이 하자고 하여 만났는데 벤츠 S 500 모델을 몰고 왔고, 밥값도 그가 내었고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몇 시간 동안 그가 살아온 인생살이 무용담을 끊임없이 들어주었다. 그러고 또 그와 몇 년 뒤에 만날까는 알지 못한다.

 

밥값과 커피값이 얼마나 하겠나. 오후 내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단을 맞춰주었으니, 요즘은 거의 공짜인 것처럼 보이는(내 스스로는 비싼) 내 일당 값만큼 하는지 그의 일당 값이 추가되어 더 비싸게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밥 먹고 커피 마신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가는 사무실 밖에서 머그잔을 감싸 안고 혼자 마시는 커피에서, 일기일회 했던 그 어떤 시절의 맛이 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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