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 그것은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듣는다.
7080 유행했던 송창식의 옛 노래를 들으며
철 지난 사람이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파도 자국 따라 걷는 발자국들도 밀려오는 파도에 지워져 간다.
동해바다 파도 소리는 겨울바람 소리에 포말을 뿌리면서 오랫동안 철썩인다.
그 여름날마다 작열하던 태양은 가득히
작년 여름에 알랭들롱과 함께 가버렸다.
겨울 백사장은 사람도 바다도 철 지난 고독의 하얀 그림판이다.
썰렁한 백사장에서 몇 마리의 까마귀들이, 사람들조차 가버려서 귀해진 쓰레기 봉지를 찾아내어 조촐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음력 설 명절이라고 고향으로 가던 길은 몇 년 전부터 영천 호국원으로 가서 부모님 영정 사진 화면으로 뵙는다. 제한된 시간 동안 예를 갖추고 나오며, 가까운 지역인 경주 대명공원 묘원에 모신 사돈 산소도 방문하였다.
영천호국원에는 유독 1930년 근방에 태어나신 분들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 1948년생으로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 많이 보인다. 1948년생도 연세가 얼마 안 되는데, 공원 묘원에 사돈은 1956년생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대명공원 묘원에 와서 주변 묘지석에 쓰인 생년들을 보니 엄청 젊은 나이에 하직하신 분들이 꽤 많았다.
태어난 날들은 달랐지만 한세상 살다가 돌아가신 순서대로 묘지석이 줄지어 놓여 있다.
저녁에 동해안 바닷가 울진군 평해읍으로 지명이 된 곳인 직산항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왔다. 직산항이라는데 갈매기 몇 마리만이 보이고 황량하다. 직산이란 지명은 천안에서 직장 다닐 때 숙소에서 가까운 1호선 전철 직산역과 같은 곳이라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직산리가 주소로는 평해읍 개바위길이라고 하며 지도상으로는 이 동네에도 조그만 슈퍼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막상 가보니 시골 구멍가게 같고 그나마 문을 닫았다.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고 겨울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집들도 빈집같이 문이 닫혀있다. 여름 한철 민박이나 펜션 장사하는 분위기다.
머무는 숙소에서 식당이나 편의점 슈퍼라도 가려면 평해읍이나 후포로 나가야 하는데 양쪽 다 4킬로 거리다.
그런데 평해나 후포도 큰 곳은 아니고 작은 마을 같다. 참고로 평해읍 인구는 24년 말 기준 2,488명이고 후포면 인구는 6,980명이다.
숙소에서 나서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이다.
동해바다의 바람 소리가 밤새도록 거세게 지나간다.
안도현 시인의 '섬'이란 시 중에 공감하던 구절이 있었는데 그런 곳에 온 듯하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 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양한 종류의 책들도 많고 각종 종교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무엇인가?
한때는 삶은 계란이냐 삶은 달걀이 맞느냐 농담했는데, 삶이란 실제로 삶은 돼지고기 수육에 새우 젓갈을 얹어서 먹는 순간인듯하다. 문상 가서 삶은 돼지고기 앞에 놓고 고인의 지난 생을 이야기하면서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한다.
지인들 중에서 갑자기 심근경색이나 뇌졸증으로 위중하다거나 급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큰 충격을 받으며 문상할 때가 가끔 생기곤 한다.
최근에 파스칼의 팡세나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인생 교훈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던데, 그분들이 다 건강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그들이 남긴 것 중에 좋은 열매만 따 먹는 세상이다. 막상 그들 본인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얼마나 힘들게 삶을 살다 갔을 것인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에 가느라 집을 나선다. 무엇 하러 가는지, 무슨 성과를 얼마나 보았는지 보다는 제일 먼저 그들 각자가 건강하여야 삶을 이야기할 수가 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일어나는 것이 평안한 삶이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산다는 것이 뭐냐라는 질문에 "우선은 살고 볼 일이다. 철학은 그다음이다."라고 했다.
삶은 무엇인가. 장자는 지북유 편에서 '기가 모이면 삶이고 흩어지면 죽음이다'라고 하였다. 철학적 명제를 놓고 생각하면 수많은 전개와 표본들이 보이겠지만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이 그런다.
인생 뭐 별거 없다고.
한때, 내가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다시 보면 한편으로 인생 참 별것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살아가면서 바뀌기도 하겠지만 모든 면에서 본받고 배우고 싶은 표상이 있으면 좋은 것이다.
좋은 삶, 참다운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이란?
사람들마다 각자 나름대로 살아온 방식이 있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생각이 다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인데 번역되어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라고 한다.
삶의 시간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