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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봄이 안 오기야 하겠나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5년02월05일 13시1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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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와야 하는 것이고 올 때쯤 되었는데 기다리다가 지쳐서 못 믿을 정도로 오지 않는 것이 있다.

알고 보면 조금 더 기다리면 될 것을 마음이 급할 뿐, 제대로 올 시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지 않아도 되는데 미리 오는 것도 있고, 오지 말아야 하는데 오는 것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인사말 삼아 "뭘 억지로 오시려고 오지 않아도 되는데" 할지 몰라도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온다. 매년 왔었고 올해도 오는 줄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오지 않으면 큰일이다.

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와야지, 매년 똑같은 과정을 겪었으면서도 추위가 길어지다 보면 봄이 오기는 오는 것인가,  이 추위가 언제 끝날 것인가를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말을 반복하게 된다.

 

 


 

 

입춘도 지나가는데 기나긴 겨울은 자리를 비울 줄 모르고, 봄은 어디에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춘래불사춘(春 : 봄 춘, 來 : 올 래, 不 : 아니 불, 似 : 같을 사, 春 : 봄 춘)이라고 한다.

중국 당(唐) 나라 사람 동방규가 지은 시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에 춘래불사춘을 처음으로 사용한 구절이 나온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오랑캐 땅에는 화초 없어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왕소군은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왕의 애첩이 되었으나 머나먼 타향살이가 쉽지는 않았을 터이기에 동방규는 그녀의 불운한 정경을 시구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기서 전하여 춘래불사춘은 봄이 왔으나 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시리고 힘든 상태를 의미한다.

 

춘래불사춘은 '무언가 좋은 상황이 올 때가 되었는데,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못하고 뭔가 어정쩡하고 깔끔하지 못하게 진행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된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따뜻한 가을이나 겨울을 가리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이라 말하기도 한다.

계절이 계절 같지 않고 옛날이야기같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이 어떻게 보면 춘래불사춘과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다. '환경'은 여전히 오늘의 문제이고, 더욱 절실한 미래 세대를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 전 세계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환경 분야 최고의 고전으로 윌리엄 더글러스는 '침묵의 봄'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이후 가장 혁명적인 책이라고 평가했다.

 

린다 리어의 저서 '레이첼 카슨: 자연의 증인'에서는 “역사를 바꾼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에 바로 이 '침묵의 봄'이 포함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꾸기는 바꾸고 있는데 아직도 바꾼 것 같지 않다고나 할까.

언젠가는 분명히 바뀌어 가겠지만 마음처럼 지금은 아직 아니니 춘래불사춘이다.

 

회사 다닐 때 공장 부문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성함이, 성씨는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생략하고 이름으로 춘래 상무였고 그분의 별명은 불사춘이었다.

회사 사무실에는 어디나 비슷하게 그 조직의 직위가 높은 사람이 어떤 일로 자리를 비우는 날에는 해방감이 생기고 자체 분위기 정화가 아주 잘 된 날이라고 많은 사원들에게 쓸데없는 활력이 넘치곤 했다. 그래서 공장에 춘래 상무가 안 계시는 날에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하던 때가 생각난다. 

 

저 멀리서 봄날이 오고 있을 것이다.  절기상으로는 이미 입춘이 왔고 이제는 봄이 올 것이라 큰 대문이 있는 각 가정과 지역 향교들에서는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입춘축을 달리 입춘서(立春書)나 입춘방(立春榜)이라고도 한다.

입춘축은 입춘을 맞아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글귀로,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문구가 대표적이다. 각각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라', '맑은 햇볕이 가득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은 아파트 현관에도 붙어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미신이지만 대중화되어 일반 사람들의 염원들이 모여서 몇 개의 글자로 나타내어진 것이다.

 


 

 

입춘 날짜는 어떻게 정하는가. 통상 매년 2월 3,4일 경에 입춘인 것으로 아는데 예전에는 2월 5일도 입춘이었다.

입춘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구를 가로지르는 태양의 외견상의 경로(황도)가 특정 지점에 도달하는 시각을 가리킨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매년 발행하는 역서에 24절기의 절입시각을 명기한다. 입춘의 기준점은 황경 315도인데, 2025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3일 23시 10분이다.

 

입춘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고 하기도 한다.

춘래불사춘의 아닐 불 (不)이 아니라 반드시 필 (必)이 되어 춘래필사춘이니 봄은 봄이고 여름은 여름이고, 겨울이 가면서 봄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 당연한 것은 없다지만, 계절은 당연한 줄 알면서도 당연하길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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