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오면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새 학년에 올라가고 새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느라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장면들이 아련하게 추억이 되어서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그때는 몰랐던 그림들이,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해가 될듯하게 더 떠오르기도 한다.
육 년간의 초등학교생활을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교실에 배치되어 가던 날, 인근 여러 초등학교에서 온 동급생들이 떠들썩한 교실에서 누가 일어나서 "조용히 해라" 하고 분위기를 압도하며 서열을 정리한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 몇 명 외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의 학생들이 모인 첫날부터 남학생들의 기싸움이 시작되는데 그 소리를 하던 학생은 남들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더 들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학생이었는데 학교에 늦게 입학하였다고 하며 평소에도 상당히 어른스러운 모습이었고 처음에 분위기를 압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지내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별로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의 집은 학교에서 삼십 리나 떨어진 시골이었고 주변에 중학교가 없어서 먼 길을 매일 아침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힘의 세력들이 몰려다니며 관심을 유발하고, 그 키 큰 동기는 관심 밖으로 잊히듯 하였다. 졸업하고서 나중에 그때 그 동기생이 왜 학교 다닐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는지, 어디 갔지 하는 의문이 생겨서 수소문하여 물어보니 절에 가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왜 그 어린 나이에 스님이 되었는지 그의 인생살이가 어떤 것이었는지 아는 것은 없다.
나태주 시인의 삼월이란 시에 이런 글이 나온다.
젊은 아이들이 / 다시 한번 새 옷을 갈아입고 / 새 가방을 들고 / 새 배지를 달고 / 우리 앞을 물결쳐 / 스쳐가겠지
그러나 / 삼월에도 /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삼월이란 이름을 가진 옛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여학생 이름도 강삼월이 있었고, 박경리 소설 토지에도 삼월이가 나오고 일일드라마 연속극 별난 가족에서도 강삼월이 나왔다.
예부터 미천하게 부르는 이름이 오래 살고 건강하다고 개똥이 똥강생이 도야지 등으로 부르고 삼월에 태어난 사람은 쉽게 삼월이라고 불렸다.
요즘에는 삼월이란 이름을 가진 개와 고양이가 꽤나 자주 방송에도 나온다. 개와 고양이의 지위가 많이 올라간 것이다.
삼월이 오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나온다는 경칩이 있고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한다.
삼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다는 나태주 시인의 글처럼 계절은 바뀌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는 사람들도 많을 수도 있다.
삼월에 만난 중학 동기를 일학년 때 같은 반에서 보고는 그 큰 키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은 일찌감치 스님이 되려고 절에 갔었는 것 같은데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동기 생각이 가끔씩 난다. 친구들은 졸업을 하면 어느 고등학교로 갈 것인가 모두가 들떠 있었을 것인데 그 나이에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을 것이라니.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에서 나오는 유명한 글이다.
스님이 되었다는 그와 나는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두 번째는 그때의 내가 관심이 없어서 남아있는 기억이 없고, 나중에도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만 지금까지 영영 못 만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한 사람, 그는 내가 한때 잘나가던 시절에 뻔질나게 내게 연락하고 찾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없어졌다.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지 오래되길래 내가 먼저 연락을 하여 보았더니 번호가 달라졌고 카톡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전화번호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와 연락이 가능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나도 적잖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진 후에는 다시 만난다는데 사실 그런 성어도 많이 의심스럽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같이해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인생사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일어나는 고통들이다. 현대인들은 거의 매일 비즈니스 세상에 살다가 보니 수많은 애별리고와 원증회고를 겪고 살아간다.
그걸 고통이라 하기보다는 세상살이의 한 방편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라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만 힘들어진다.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할지라도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원효 해골물은 대단한 깨우침이다.
원효대사 해골물과 해골물 담금주 병, 해골 와인 잔, 해골 양주병도 상품화되어 나오는 세상이다.
일체유심조도 즐길 줄 아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도가 트인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