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하와이로 떠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대선 정국의 중심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계은퇴 선언, 국민의힘과의 결별, 그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측과의 미묘한 거리감까지. 홍 전 시장의 입지와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 당에서 은퇴했을 뿐…대선 끝나면 돌아간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청년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을 통해 “나는 국민의힘에서 은퇴한 것일 뿐”이라며 “대선이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을 향한 지지자들의 복귀 요청에 응답하며 “다섯 번의 국회의원, 두 번의 경남지사, 한 번의 대구시장 모두 당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당이 내게 베푼 건 없다. 박근혜 탄핵 후 궤멸된 당을 내가 되살렸다”고 회고하며 사기 경선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이유로 국민의힘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노무현의 민주당으로 갔으면 가슴앓이 없었을 것”…보수 진영 향한 회한
홍 전 시장은 국민의힘과의 오랜 갈등에 대해 “30년 전, 정치를 몰랐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꼬마 민주당에 갔다면 지금처럼 의리와 도리가 통하지 않는 당에서 가슴앓이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경선을 ‘사기 경선’으로 규정하며 “내 청춘을 묻은 그 당을 떠났다. 나는 보수 진영의 아웃사이더였다”고 자평했다.
또한 그는 “누군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이 몹쓸 정치판을 대대적으로 청소했으면 좋겠다”며 현실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나미 떨어졌다”…홍준표 두고 설전 벌이는 여권
홍 전 시장의 발언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찬반이 갈리는 격론이 벌어졌다.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은 “수차례 당선된 분이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된다”며 “타고난 인성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사기 경선 피해자에게 인성을 운운하는 건 싸가지 없는 짓”이라며 권 전 위원장을 맹비난했다.
반면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은 연이어 “홍 전 시장의 마음을 풀어 함께 해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나 의원은 “보수정당의 큰 어른으로서 애국심을 믿는다”며 직접적인 귀환 요청까지 했다.
홍 지지자들, 이재명 지지 선언…‘정치적 전이’ 일어나는 중
홍 전 시장의 존재감은 그의 직접적인 정치 활동 없이도 확산되고 있다. 그의 지지자 모임인 ‘홍준표와 함께한 사람들(홍사모)’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홍 전 시장이 “이번 대선은 이재명 대 이준석의 양자 대결”이라고 말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홍사모는 “국민의힘은 더 이상 보수정당이 아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을 조종하는 세력이 여전히 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캠프에 참여한 홍 전 시장 측 인사들 중에는 과거 선거 캠프 미디어팀과 SNS팀,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이언주 의원까지 포함됐다.
이 같은 상황은 홍 전 시장의 직접 출마 없이도 그의 상징성과 정치적 자산이 여야를 가로지르는 파급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리설까지 나도는 가운데…정계복귀 시점은 대선 이후?
일각에서는 이재명 캠프가 차기 내각에서 홍 전 시장을 국무총리로 기용하려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으나, 민주당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보도는 홍 전 시장의 정치적 무게감을 반증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 전 시장은 여전히 하와이에 머물며 “하와이는 놀러 온 게 아니라 대선을 피해 망명한 것”이라고 했고, “대선이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못 박았다.
한때 보수의 이단아로 불렸던 홍준표 전 시장은 이제 여야 모두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의 변수’가 되고 있다.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실제론 정치 중심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은 그의 발언과 행보는 여전히 정치권을 요동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