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의 한 아파트에서 반려견의 단지 내 산책을 금지하는 방안을 두고 주민투표가 진행돼,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투표 결과는 단 2표 차이로 ‘산책 금지’ 의견이 앞서며 해당 아파트 단지 내 반려동물 갈등이 또다른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14일 KBS 보도에 따르면,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아파트 내 지상공원에서 반려견 산책 금지에 대한 찬반 투표 안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부착됐다. 안내문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한 사안에 따라 10일과 11일 양일간 전자투표를 진행하니, 입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주민들 간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 산책 금지에 찬성하는 측은 “지상공원에 반려견 배설물이 방치된 경우가 많고, 일부 주인들이 목줄 착용이나 배변 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쾌한 일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펫티켓을 제대로 지켰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라며 제한 조치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반면, 반대 입장을 보인 주민들은 “배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일부 사례를 전체 반려인에게 일반화해선 안 된다”며 “주민 갈등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배변 문제는 관리와 계도로도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자투표는 총 460여 세대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투표 결과는 찬성 203표, 반대 201표로 사실상 반반에 가까운 팽팽한 접전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점을 보여준다.
온라인 여론도 엇갈렸다. 찬성하는 누리꾼들은 “요즘 개가 똥을 싸도 핸드폰만 보다가 그냥 가는 견주가 많다. 이 정도면 투표가 열릴 만하다”거나 “반려견 수가 많아진 만큼 공동체 내 규칙도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반대 측은 “반려견도 가족인데 이건 과하다”, “이러다 ‘노 펫 아파트’가 확산될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아파트 단지 내 반려동물 관련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경기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반려동물의 단지 내 산책은 물론, 엘리베이터 등 공용 공간에서의 '노출'까지 금지하는 공지가 나와 논란이 됐다.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는 외부 반려동물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인식표를 도입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단순한 생활 불편 문제를 넘어 공동체 내 공존의 룰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웅종 서울디지털대학교 반려동물전공 교수는 “배변 처리 미흡이나 목줄 미착용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 이런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반려인들은 기본적인 펫티켓을 지키는 것은 물론, 예절 교육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다연 동신대 반려동물학과 교수도 “아파트 내 반려동물 산책에 대한 일괄적 금지보다는 목줄 착용 여부나 배변 처리 여부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며 “별도의 산책 구역을 마련하는 등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파트 차원에서의 규제가 강화되는 사례는 이미 몇 년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2023년 3월 경기 성남의 한 아파트는 입주민조차 단지 내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공지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아파트에는 ‘반려동물 산책 불가’라는 문구의 안내문이 붙었고, 반려견이 출입하거나 노출될 수 없는 구역으로 계단, 복도, 놀이터, 승강기, 화단, 커뮤니티시설, 주차장, 산책로, 지상 공간 등 사실상 단지 내 대부분의 공용 공간이 포함됐다. 해당 아파트는 또, 금지 구역 내에 쥐약, 유박비료, 뱀 기피제, 광견병 미끼 등의 유해물질을 비치하겠다는 경고도 함께 내걸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이 같은 규제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KB금융그룹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262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반려 인구의 증가와 함께 공동주택 내에서 지켜야 할 ‘펫티켓’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펫티켓은 ‘반려동물(pet)’과 ‘예의·에티켓(etiquette)’의 합성어로, 반려동물 양육 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을 뜻한다.
공동주택에서 반려인이 지켜야 할 펫티켓으로는 외출 시 반려견에 2미터 이하의 목줄이나 가슴줄을 착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승강기 탑승 시에는 목줄이 끼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반려견을 안고 탑승하는 등 주의가 요구된다. 배설물은 즉시 수거해야 하며, 아파트 내·외부에서는 반려동물의 털을 빗는 행위도 피해야 한다.
비반려인 역시 반려동물에 대한 펫티켓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반려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다가가거나 만지는 등의 행동은 반려견과 보호자 모두에게 예기치 않은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이 같은 행동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반려견의 소음 문제 역시 공동주택 내 빈번한 갈등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1월, 경북의 한 아파트에서는 반려견이 시끄럽게 짖는다는 이유로 한 입주민이 같은 층 이웃과 언쟁을 벌이다가 빵 칼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해 특수협박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고병희 반려견 행동심리 전문 훈련사는 “반려견이 짖는 이유는 각 개체의 성향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먼저 짖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려견이 짖을 때 보호자가 큰소리로 “안 돼”, “하지 마”라고 소리치는 경우, 반려견은 주인이 함께 짖는다고 인식해 오히려 흥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동주택에서 흔히 발생하는 ‘경계성 짖음’의 경우, 외부인의 발소리나 초인종 소리 등에 반응해 짖는 행동이다. 고 훈련사는 이럴 때 “짧고 단호한 주의 신호(예: ‘어!’)를 준 뒤 즉시 자리를 떠나고, 반려견이 짖는 것을 멈추는 순간 다시 등장하는 훈련을 통해 규칙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에는 반려견이 외부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자극을 만든 뒤, 짖지 않을 때 간식을 주는 방식으로 교정을 시도하면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