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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완행열차와 광역전철 여행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07월10일 14시1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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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완행열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다가 시골 장터에 들러서 해물파전이나 부추 전에 막걸리 한 사발 하는 것도 좋다.

 

옛 시절 서울에서 부산진까지 12시간 이상 걸리던 완행열차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늙어가고, 비둘기호나 통일호 같은 완행열차는 사라졌다.

 

완행열차를 일부 대신하는 것은 각 역 정차하면서 대도시 간 연결하는 광역전철이며 완행열차 대비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시내 지하철과 다르게 지상으로만 달리니 사방으로 전망이 확 트여있으며 사계절 풍광이 시간별로 다르게 다가온다.

 

 

 게티이미지 
 

 

 

서울에서 출발하면 여러 곳으로 갈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철 1호선 천안 아산 온양온천까지 넓은 차창 유리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경치들을 감상하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면서 한두 시간의 공백을 즐기며 온양온천 역에 내려서 아산 현충사나 외암마을 혹은 임금님도 다녀갔다는 온양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시장에 들러서 입맛 닿는 대로 식사를 즐기며 한나절 놀다가 다시 돌아오면 저녁이다.

 

물론 천안에 독립기념관이나 아산에 다른 관광지도 가 볼 만한 곳이 많다.

 

광역 전철이 아니어도 거의 완행인 무궁화 열차를 타고 천안에서 조금 더 내려간 대전으로 갈 수도 있고 대전의 축제도 즐길 수 있다.

 

2024년 대전 0시 축제는 8월 9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중앙로와 원도심 일원에서 지난해 인기에 이어서 올해도 열리며 대전을 대표하는 가요 ‘대전부르스’의 가사 ‘대전발 0시 50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영화와 노래로 발표된 '대전발 0시 50분'은 여러 가수들이 불러서 꽤 유명했는데 조용필과 주현미도 리메이크해 불러 인기를 얻었다.

 

열차에 얽힌 사랑과 이별의 정서를 담은 노래로 지금까지 대전을 대표하는 대중가요로 남아 있는 곡이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 발 0시 50 분 / 세상은 잠이 들고 고요한 이 밤 /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아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 목포행 완행열차

 

아울러 2019년에 발매된 장윤정의 히트곡 '목포행 완행열차'이다.

 

목포행 완행열차 / 마지막 기차 떠나가고 / 늦은 밤 홀로 외로이 / 한잔 술에 몸을 기댄다 / ~~

 

완행열차를 타고 가는 노래는 옛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의 한이라는 느낌이 많은데 말 그대로 완행열차가 있던 옛이야기다.

 

 


 

 

천안에 거주할 때 안양에 회사 업무가 생겨서 한 3년간 전철을 타고 안양으로 출퇴근한 적이 있다.

 

나는 천안 직산역에서 아침 7시경에 전철을 타는 데 그전에 아산이나 천안 두정역에서 미리 타서 금정역까지 같이 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전철은 차량이 10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칸마다 문이 4개씩 있으며 승차장 바닥에서 문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전철을 탄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 출근자들이며 매번 타던 같은 차량번호 칸에 타는 습성이 있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타는 것 같지만 장거리 광역 전철에서는 몇 호 차를 탈지 각자 묘한 선택 기준이 있는 듯하다.

 

내가 9-2번 차량 칸에 타면 그 시간에 그곳에 타던 사람을 만나고 1-3번 차량 문으로 들어가면 그 칸을 애용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날 기분에 따라 10개의 차량 칸 중에 한곳을 선택하고 그 칸에 타고 있던 사람은 그대로 있을까 하는 약간의 설렘도 맛본다.

 

오늘은 1-4번 문으로 타니 언제나처럼 마주 보이는 좌석에 그 아가씨가 앉아있고 한참 동안 폰을 보고 있다가 이제 자려는 모양이다. ​역시 5분도 되지 않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이 동그랗게 커지기 시작하며 하얀 이빨을 들어 내놓고 자고 있다. 열차 안이라 벌레 같은 것들은 입으로 들어가지 않겠지만 예쁜 얼굴에 모양새가 작품이다.

 

빵과 우유 등의 간식거리를 놓고 식사를 하는 사람, 이마 위에 파마하듯 모두 동그란 테로 앞머리칼을 감고 나란히 앉아있는 세 여자, 무릎 위에 가방을 열어놓고 작은 거울을 보면서 머리칼을 빗어 다듬으며 아주 오랫동안 얼굴 화장 중인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등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고 다양함이 보인다.

 

온몸이 휴대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사람과 노트북으로 서류 작성하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 등등. 광역 전철 안에서 세상이 달려가고 있다.

 

수원을 지나 금정역으로 가는 구간에서는 사람도 많고 복잡해지는데 도착역이 다 와갈 때쯤에 졸음이 쏟아진다.

앉아서 졸다가 눈을 뜰 때마다 내 자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뀌며 일부러 보기 힘든 장면도 보이고 오탁번 시인의 '운수 좋은 날'의 시 일부 구절이 설명본 같이 느껴진다.

 

~~ / 눈을 뜨고 보니 / 내 앞에 배꼽티를 입은 / 배젊은 아가씨가 서있었다.

하트에 화살 꽂힌 피어싱을 한 / 꼭 옛 이응 ㅇ 같은 / 도토리 빛 배꼽이

내 코앞에서 / 메롱 메롱 늙은 나를 놀리듯 / 멍게 새끼마냥 옴쭉거렸다.

전동차 흔들림에 맞춰 / 가쁜 숨을 쉬는 / 아가씨의 배꼽을 보면서 / 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반면에 오후 시간의 천안행 광역 전철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오산 송탄 평택을 지날 때쯤이면 몇 개의 차량 칸에 아무도 없이 혼자 타고 갈 때도 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들판과 산의 풍경과 함께 길게 꼬리를 지어 따라오는 빈 차량 칸의 모습은 이국적이고 멋진 풍경이다.

 

오후에는 평택 공단과 천안 공단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타고 특히 평택에는 특이한 모습의 여성들도 자주 보인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여성은 양쪽으로 빗은 머리칼이 앞으로 내려와 양쪽 가슴을 덮고 있다.

아래 위로 같은 무늬 짧은 치마에 양 다리를 바짝 붙이고 앉은 단정한 모습인데 무릎 아래 다리에는 흉터 자국들이 많다. 발가락 두 개만 밖으로 보이는 신발을 신고 엄지발톱은 파랑 바탕에 큰 큐빅 보석이 붙어있고 검지 발톱 위에는 금장식으로 번쩍인다. 뭘 하는 사람일까, 잠시 궁금해하고 있는데 큰 발톱 여인이 갑자기 일어나 내려 버린다.

 

하행은 수원을 지나면서 전철 자리가 텅 비었고 한번은 옆자리의 긴 머리 아가씨와 둘만 달랑 같이 앉아 간 적이 있다. 자리가 많이 비기 시작하면 통상 다른 넓은 자리로 옮기는데 갑자기 많은 자리가 비어버렸고, 내가 먼저 자리를 옮기면 옆자리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하다가 그대로 앉아서 서로 옮기지도 않은 상태다. 텅 빈 열차 칸에서 덩그러니 앉아있는 그림이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 향내가 낯선 내음이고 캐리어 여행 가방과 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을 보니 중국 아가씨다.

 

승용차를 몰지 않고 광역 전철을 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름 여행이라 생각하며 다닐 수 있지만 가끔은 진짜 관광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 한국관광공사 

 

 

참고로 코레일에서 운영하고 있는 관광 열차는 동해 산타열차, 서해 금빛열차, 백두대간 협곡열차, 남도 해양열차,정선아리랑 열차, 교육 열차, 국악 와인열차, 에코레일 열차, 팔도장터 열차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객실 내 유리창이 통으로 되어 있어서 스위스를 연상케 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은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철암까지의 구간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

 

전철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으며 휴대폰을 들고 가방을 메고 있다.

 

세상의 잡음을 배제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필요한 물건은 알아서 챙겨 다닌다.

이어폰도 가방도 없이 괜히 바쁜 척하며 여러 사람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내가 외계인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1호선 전철에는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노선이라지만 업무가 바쁜 사람들이고, 반면에 지공도사라 하고 지공선사라 하기도 하는 내공을 가진 분들은 느긋하게 다양성을 즐기며 먼 거리를 갈 수 있어서 좋아하는 제1 코스가 1호선 천안 아산 온양온천행 열차라고 한다.

 

출퇴근 시간을 벗어난 조용한 시간에 타 보면 옛날 완행열차와는 또 다른 낭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前 기업 대표 신 종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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