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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공장 회식자리에서의 기억들

칼럼리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07월24일 14시3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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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 2시에 진급자 발표가 났다.
그리고 당장 그날 저녁에 진급자 환영 축하 자리가 있으니 사장님 단골집에 차장급 이상은 모두 모이라고 하였다.
그날따라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점심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는데, 회사 버스 타고 식사 자리에 겨우 도착하니 이미 고참 부장들부터 임원들과 사장까지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모여 있었다.
회식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후래자 삼배가 아니라 고참들 모두가 술잔을 권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날 회식에 참석한 진급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는데
화장실 변기에 쭈그리고 처박혀 있는 사람, 식당 화단에 드러누운 사람, 식당 밖에서 토하는 사람, 방 한 쪽 구석에서 잠이 든 사람, 어딘 지도 모르게 혼자 가버린 사람 등등 분위기는 난장판 수준이었다.
술이 점점 오른 나는 목소리가 올라가면서 그동안 사장님의 악명 높은 통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떠들기 시작하였다.
사장님 옆에 앉아있던 고참 부장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들도 언듯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도 무슨 짓을 했는지 별생각도 없이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기획 부장이 최고라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셨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넌 이제 잘렸다고 걱정을 하였는데, 실제로 그 사건 이후에 공장 현장으로 발령이 나고 공장 라인의 고질 불량 부품 분석 태스크를 맡게 되었다.
연구소에 있다가 갑자기 공장 현장에 오니 황당 그 자체였지만 3개월 정도 지나니 그것도 재미있었고 새로운 인생 경험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
저녁 강 위로 다리 길게 펼쳐지고 불빛들이 줄을 선다
새벽에 달려왔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저녁 어스름으로 빨려 들어간 지 오래
이제 저녁시간인가 하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고
대낮이 남긴 찌꺼기들이 술잔 위로 날아다닌다.

 

무얼 그렇게 위해야 하는지 위하여 위하여 위! 하! 여!
술잔이 으스러지도록 복창 소리 그득하다.
온갖 건배 구호들이 날린다.

 

한 눈치 술잔들이 빠르게 권해지고
목을 걸듯 외치는 군상들
밥줄 떨어지지 않을 듯하다.

 

높다는 사람으로부터 술 한 잔 받아들었고
술 한 잔도 권해 올렸으니
오늘도 많은 일 했다.

 

 

3.
회식하고 나오는데 누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무척 반가운 표정인데 사실 누군지 아리송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어보기도 그렇고 같이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굴까하고..

 

몇 년 전에는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고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했고 내 기분은 별로인 채로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알아도 그 사람들이 되려 나를 잘 몰라서 아리송하게 생각하곤 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아는 체를 한다.
신입 부서원이 짧은 기간 내에 워낙에 많아져서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직급도 올라가면서 신입사원들과 만나는 기회가 적어진 것이다.
옆에 부서까지 합하면 족히 2천 명이나 될 터인데 어찌 그들의 이름을 다 알까 하는 자조는 해보지만 무언가 다른 아쉬움의 씁쓸함이 남는다.

 

언젠가는 신입사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회식에 참석하여 술 다 받아 마시기 객기를 부리다가 술에 절인 적도 있었지만, 신입이란 말 그대로 매달 새로운 사람들로 북적대는 통에 이름 외우는 속도보다 사람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듯하다.


 

4.
회식을 하러 가는 것인 지, 회식을 당하러 가는 것인지 별생각 없이 그저 배 채우러 가는 것 같기도 하였는데,
회식 자리도 연극의 일부였다.
회식자리 예상 대본을 잘 외우고 간 날은 그나마 조용한데, 쌓이고 쌓였는데 오늘 술 좀 마셔보자고 간 날은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가 술에 부풀어 오르고 사고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술에 절어서 거의 빈사상태로 집까지 실려간 적이 그 몇 번이던가.


고깃값보다 술값이 더 많은 회식하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있는 시간은
기억에서 사라졌던 시간이다.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과 이야기를
그냥 해버린 듯한 후회의 시간
어젯밤에 부서 회식에서 결국
필름이 끊긴 듯한 행사를 기록했다.

 

마지막 시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 사람이 지금 화류계 생활 일박 이일 하는 거야"라고 전임 사장은 강하게 이야기를 하였고
실제 전임 사장의 이미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로서 남아있다.

 

화류계 생활이라는 것이 뭔가.
오래전에 학교에 다닐 때 종종 술집 거리를 지나치다가 보면 돈을 제대로 못 받아서 욕을 욕을 해대며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많은 모습들을 보았고, 돈에 웃음을 팔고 산다는 유행가와 그런 상점들이 길가에 즐비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별의별 종류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네들은 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서빙을 하고 대가를 받는다.
그냥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피곤해서 슬슬 자리를 피하고 싶은 사람이 득실대는데, 그런 사람 이런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싫은 내색 없이 때로는 손님이 부리는 별의별 종류의 횡포까지도 고스란히 받아 가면서 서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이 아닌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간단히 묘사해 보면 돈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별짓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화류계 생활 같은 연속이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돈을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자존심을 버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때로는 그런 자존심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오직 돈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별생각도 없이 반사적으로 누가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꾸역꾸역 움직이고 있는 사람 들도 많으리라마는 돈에 배고파본 사람만이 안다고 한다.
어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한다.

 

나 혼자만이 살 수 없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회사에서 화류계 같은 생활을 하면서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고객이 찾아와도 반가운 모습으로 그들을 만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해 주는 이야기를 한다.
어차피 냉정하게 상대적이다. 서빙하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그곳에 가지 않듯이 그들도 내가 필요 없으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화류계에서는 단맛 쓴맛 이전에 찾아오는 손님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회사 생활을 하는 한은 화류계 생활과 별로 다른 게 없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참 놀기도 좋은 곳이 화류계이고 따지고 보면 모두가 광대다.

 

 

 게티이미지
 


5.
회식을 한다고 앉아있는데 급한 볼 일이 많은 사람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리며 마시다가 보니, 식사 테이블 같은 자리에서 세 시간 이상이나 앉아있다.
술 마시고 안주 먹고 이야기하고 전에도 많이 그런 것을 해왔는데 매번 하던 짓을 또 한다.

 

무슨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 지 꽤나 야단법석이고 한 잔씩 하는 술잔에도 큰 목소리로 전투 용어처럼 구호를 외치고 원샷을 한다.
남쪽 지방의 주법인 지 원삿은 기본이며, 술을 꺾어 마시기는 예의에 벗어난다고 용납이 안된다.
조직의 분위기는 최면처럼 사람들을 몰아가고 술자리에서도 또 다른 고강도의 훈련에 몰입하고 있다.

 

앞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머리카락이 숭숭 빠져서 훤한 사람, 흰머리 가득한 사람, 젊은 나이에 이마가 뒤로 거의 넘어가버린 사람, 명퇴 대상에 선정되었다가 겨우 구제되어서 이제는 죽을지 살지 모르게 회사에만 목을 매고 다니고 있는 사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거만하고 싹수없는 사람, 착하고 순진한 사람 등등 별의별 유형들이 바라다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 똑같이 많이들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 나 또한 그중에 한 모습이겠구나.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도 사람들은 습관처럼 눈치를 본다.
그 자리의 최고 책임자 성향에 따라 술 마시는 모습도 무척 달라진다
전에 책임자는 와인을 좋아하고 술 권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 사람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소주에 삼겹살이 기본이고 필요시에는 폭탄주로 테이블마다 달성해야 할 구호를 달고 동시에 술을 넘긴다.
술이 취하여 용감하여지면 더 충성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통제 범위를 벗어나서 객기를 부리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자제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술을 조심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지만 그때의 회사 술자리는 비교적 시끄럽고 많은 일을 하겠다는 맹세의 장이 되는 군사훈련의 일부 같기도 했다.

 

회식자리도 세월이 지나갈수록 세대가 바뀌면서 술 마시는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재미있게 해주는 객기성 삽질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그만큼 술자리도 옛날과 급격하게 달라졌고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은 통과의례 같은 하나의 과정으로 짐이 된듯하게 남아서 해결해 내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기업인 신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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