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약 1년 만에 줄어드는 등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가계의 ‘빚 다이어트’가 시작된 가운데, 은행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가계대출 수요의 흐름을 따라가던 과거와 반대 양상이 나타난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자영업자의 전반적인 이자부담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매출하락·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상환보다 대출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321조6549억원으로 전달(320조7940억원)과 비교해 8609억원(0.2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만 5조4025억원이 늘었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심지어 올해 3월까지 석 달 동안 지난해 증가액의 45% 수준인 2조4245억원이 증가했다.
반면 가계대출의 경우 약 11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93조5684억원으로 전달(695조7922억원)과 비교해 2조2238억원(0.3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 금리 조정 및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가계대출 상승세를 이끌던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줄어들면서다.
통상적으로 은행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가계대출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생계를 위한 소규모 사업장이 다수인 개인사업자의 특성상, 개인자금과 사업자금을 구분하지 않고 운영자금으로 융통하는 사례가 많은 영향이다.
이같은 양상은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전반적인 비용지출이 늘어나며 운영자금 부족을 겪는 사례가 늘어난 결과다. 나이스(NICE)평가정보가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 연체금액은 27조3833억원으로 지난해 말(18조2941억원)과 비교해 9조892억원(49.7%) 급증했다. 자금 부족으로 인해 이자 납부조차 어려워진 사례가 늘어난 셈이다.
무엇보다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자영업 대출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며 이자비용 부담이 가중됐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대출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는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담대 등 가계대출 금리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대출 금리는 변동폭이 적었다. 연체율 상승으로 인한 건전성 관리 비용이 금리에 반영된 결과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달 취급한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4.29%로 지난해 상반기 말(4.77%)과 비교해 0.48%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대출(보증서담보대출) 금리는 5.07%에서 5.03%로 0.04%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실제 금리 부담을 반영하는 지표인 잔액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금리의 경우 지난달 기준 5.9%로 0.09%포인트 증가했다.
그마저도 은행권 대출이 가능한 경우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건전성 우려에 따른 은행 개인사업자대출 문턱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 불가능한 자영업 ‘다중채무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73만1283명으로 전체 개인사업자 가운데 절반 이상(51.5%)을 차지했다. 더 이상 돈을 빌리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과반이라는 얘기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리 연 7% 이상 대출을 보유한 개인사업자들의 금리 수준을 최대 5%로 경감하는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는 등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금융부담 완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책을 시행하며 소상공인 부담 경감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2월 체감 경기지수(BSI)는 50으로 연중 최고점을 기록했던 지난 9월(70.5)과 비교해 20포인트가량 줄어들었다. 악화 사유로는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41.8%)이 가장 많았다. 갖은 금융 지원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며, 근본적인 위기 극복 신호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는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 확대 등을 통해 한계차주를 대상으로 한 ‘출구전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일종의 ‘구조조정’ 정책인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재무적 지원에 실질적인 재기 지원 방안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