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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대추는 곤룡포 임금님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09월18일 13시5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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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주 : 

추석 명절 연휴 다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추석 연휴 및 그 다음 주에는 해외출장이라 본 칼럼은 잠시 쉽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님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봄이 오기 바쁘게 여름이고, 가을이 오는가 하면 어느새 겨울이라 한다더니 4계절도 예전 같지 않다.

올해도 과일들이 익어가고 추석이 왔는데도 여름은 그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계절은 변하고 가을은 온다.

뻔히 아는 상식일지라도 실제는 생각보다 길게 인내를 필요로 하고 시간은 기다림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을 햇살에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기까지 봄날 꽃샘바람과 작렬하는 여름 태양과 비바람 폭우를 견디어 왔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님이 쓴 글 대추 한 알이다.

마찬가지로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 가 생각나는 글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학교 다닐 때에 누가 준 작은 액자에 쓰여 있는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글이 생각난다.

매번 봐도 그때는 실상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오랜 세월이 지나서 보니 그 의미가 좀 더 선명하게 와닿는다.

대추 한 알도 한 송이 국화꽃도 변화무쌍하게 힘들었던 사계절을 겪으면서 제대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의미가 그런 것인가 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의미의 역설을 통해 의미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한다. 무의미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반대로 의미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연계 생명의 일원으로서 인간을 봤을 때, 빅터 프랭클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의미를 찾는 의지'로 보았다. 즉 인간이 움직이려 하는 본질적인 동기는 바로 '의미'란 것이다.

 

대추나무는 한 나무에 작은 꽃이 많이 피며 암수 한 나무라 피는 꽃마다 열매가 열린다. 풍성하게 열리는 대추의 의미는 혈통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내용이 전래한다.

예전에 혼인식 날 새 며느리의 첫 절을 받을 시어머니가 폐백상에서 대추를 집어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속은 많은 자손을 낳기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추는 붉은색으로 씨가 하나이고 큰 것이 특징이므로 임금님의 곤룡포와 왕을 상징한다.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을 기대하는 의미와 돌아가신 조상을 왕처럼 귀히 모신다는 정성을 담고 있다.

추석날이면 제사를 지내는 옛사람들이 대추를 필히 준비하는 이유다.

제사상에 음식을 차리는 방법은 각자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집에서 거의 고정적으로 제사상의 제일 앞쪽 좌측 끝에 대추를 놓고 그다음에 밤을 놓는다. 그리고 감과 배를 연이어 놓으면서 조(대추)율(밤)이(배)시(감)라고 한다.

 

조율이시(棗栗梨枾)란 제사상에 놓는 과일의 기본 4가지로, 대추(棗)는 임금님을, 밤(栗)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어있으므로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3정승을, 배(梨)는 씨가 6개 있어서 6조 판서(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판서)를, 감(柿)은 씨가 8개 있으므로 우리나라 8도(조선 8도)를 각각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좌로부터,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놓는다는 주장의 조율이시(棗栗梨枾)가 아니라 좌로부터, 대추. 밤. 감. 배 순서로 놓는다는 주장의 조율시이(棗栗枾梨)도 있다.

그래서 남의 집 제사상을 보면 자기 집 제사와 배와 감의 위치가 다르다고 감을 여기에 놓아라 배를 저기에 놓아라 한다는 데서 유래되어 남의 제사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은 제사상이 아니라 변형되어 남의 잔치에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한다고, 간섭하지 말라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그리 오래지 않은 조선시대에 나이 지긋한 영감님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턱없는 일로 부부 싸움이 났더라.

영감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마나님이 해주는 식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마나님은 마나님대로 "그거 잘 되었다 영감탱이 굶어봐라. 밥 달라고 빌기 전에는 밥 없다" 하면서 마찬가지로 오기를 부리게 되었더라.

서로 상대방이 먼저 수그리고 용서를 빌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기세가 등등하였다.

 

그런데 영감님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밥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방에서 나올 기척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는 요강 단지가 방안에 있었는지 밤에만 볼일 보러 잠시 나왔는지는 상세하게 모르겠지만 나흘째 되니 마나님이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 영감이 방 안에서 죽어버렸는지 궁금해서 방 주변을 슬쩍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닷새째 되는 날부터는 첫날밤 신혼 방 엿보듯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문풍지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영감님이 자리에 반듯하게 정말로 죽은 듯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마나님이 문을 열어젖히고 "하이고 영감님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빌었더란다.

그런데 영감님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니 귀신인 줄 알고 마나님이 기절초풍을 했는데 멀쩡한 모습이었다.

 

영감님이 방에 대추를 숨겨 놓고 먹으면서 몇 날 며칠 동안 아무 일 없듯이 지냈다고 한다.

대추에는 다양한 영양소와 비타민이 많아서 건강에 아주 좋으므로 가능한 이야기라고 한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옛날이야기인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추를 보면 기억에 떠오르는 웃음이 난다.

 


 

 

대추의 효능은 다양한데, 신경을 이완시키는 성분이 많아 불면증 치료에 도움이 되고, 혈관 건강에 효과가 있다. 항산화 성분도 많고 비타민 C도 풍부해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있고, 대추는 따뜻한 성질이어서 달여먹으면 냉증 치료에도 좋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는 말린 것을 복용하거나 달여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감초와 더불어 한약에서 단맛을 내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위를 편하게 하여 배가 차갑거나 설사를 할 때 유용하며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불면증에 좋다고 한다. 삼계탕 같은 여름철 보양음식에 인삼과 더불어 자주 들어가고, 떡이나 음식의 고명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말린 대추는 식용, 요리용, 과자용, 건과, 약용 등으로 널리 쓰이며, 대추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꿀 대추, 삼계탕, 약밥, 대추밥, 대추 죽, 대추인절미, 대추전병, 대추차, 과자 등이 있다. 소주 등에 넣어서 대추주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일반 대추보다 두세배 큰 크기의 사과대추 품종이 나온다. 겉모습은 그냥 대추지만 작은 사과를 연상케하는 모양에 과육이 더 두꺼운 만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그런데, 사과도 대추도 사람에게 좋듯이 각종 병 해충들도 좋아하는 과일이라 병충해 방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추씨는 볶거나 훈제하여 스낵으로 즐기거나, 대추씨를 갈아서 가루 형태로 만들어 요리에 사용할 수도 있다.

대추씨는 항산화 효과와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며, 혈액 응고를 예방하며 다량의 식이섬유가 함유되어 있어 소화를 돕고 변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산조인은 일명 멧대추라고 불리는 산대추 씨앗을 말한다. 산대추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재배하는 대추와는 효능에 차이가 있어 쓰임도 다르다. 특히 산대추 열매 속에 있는 씨인 산조인은 수면 장애 개선과 신경과민 진정,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는 밀도가 높아 무겁고 튼튼하여 같은 사이즈의 참나무나 소나무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무겁다. 도끼로 패도 도끼날이 껍질 속으로 제대로 파고들지를 못한다. 그래서 공예품의 재료로 주로 사용된다.

민간신앙에서 대추나무는 양기가 강하며 신통한 효험이 있다고 믿어서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는 벽조목이라고 부르며 도장이나 염주의 재료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대추나무를 고온고압으로 압축해서 만든 인조 벽조목이 대체품으로 널리 이용된다. 대추나무가 본래 무겁고 단단하지만, 고온고압으로 압축하기까지 하면 훨씬 단단해진다.

인조 벽조목은 단단하고 색이 까맣기 때문에 손때를 타도 티가 나질 않고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손으로 많이 만지는 물건, 그러니까 도장이나 염주 재료로 많이 쓰인다. 가톨릭, 성공회에서는 묵주 재료로도 흔히 쓰인다.

 

삼계탕에 있는 대추나 인삼은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닭의 나쁜 성분을 대추가 흡수한다고 여기거나 혹은 좋은 성분은 다 국물로 우러나와서 대추나 인삼에는 나쁜 성분만 남았다고 하여 먹지 않는데 과학적 근거가 없다. 불은 건 대추의 맛과 식감이 입에 맞지 않아서 그렇기도 한데 좋아하는 사람은 삼계탕에 몇 개 들어가지도 않은 대추를 골라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대추를 재배하는 곳은 경상북도 경산시다. 요즘은 경산이 도시화되고 공장들도 많아져서 전국 2위 생산지인 군위군으로 생산지가 이동하고 있다. 경산시는 귀한 대추 꿀도 생산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그리고 충청북도 보은군도 대추로 유명한 지역이다. 과거엔 혼인비용과 의식 문제까지도 대추로 해결하여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 처녀의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대추 꽃은 대략 6~7월에 피기 시작해서 삼복과 개화 시기가 겹치는데, 이때 비가 오면 제대로 수분을 맺지 못해 결국 대추 흉년이 들기 때문이다.

 

대추 축제는 보은대추 축제가 유명한데 올해도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뱃들공원 및 속리산 일원에서 2024. 10. 11.(금) ~ 10. 20.(일)에 10일간, 아울러 경상남도 밀양에서도 밀양 단장면 범도리 체육공원 일원에서 2024.10.19 ~10.20에 열린다고 한다.

 

다양한 외국 과일들도 워낙에 많이 나오면서 대추의 인기는 예전보다 못하다.

조율이시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세대로 잊혀갈 때면 조율이시의 대장인 대추는 어떤 위상을 가질까.

 

앞으로 대추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 지, 어떤 새로운 히트 상품이 되어 나올 것인 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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