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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은행 밟는 소리에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11월13일 13시0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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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서니 찬바람이 제법 느껴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길바닥 곳곳으로 은행잎들이 날리고 있다.

올해는 늦더위가 오래 지속되어서 단풍 소식도 늦어졌는데 시내에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 잎들이 이제 노란색으로 바뀌어가면서, 전국 각지에서도 은행나무 소식들이 올라온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사진 작품에 담으러 간 지인도 있고,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호젓한 가을길로 떠난 여행이야기들도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옆 마을에 아주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가을 깊은 날 친구가 그 은행나무 밑에 놀러 가자고 하여 같이 가 보았는데 온통 노랑 작은 부채에 물감 칠 한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노오란 은행잎을 책 속에 넣어 책갈피 하려고 고르려니 어떤 잎이 제일 좋은지 너무 많아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을 아침 산책하다가 보니 은행알들이 로드킬을 당하여 온통 길바닥에 물감을 쏟아놓은 듯하다. 그나마 식물이라서 동물이 아닌 것이 다행이나 그래도 그냥 당할 수 없다는 듯이 냄새는 아주 진하게 흩뿌리고 있다.

걷는 걸음에도 은행알들이 밟혀서 걸음걸음 뽀드득뽀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은행 열매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걸음에도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고 머언 옛날에 눈 밟으며 걷던 소리 같다.

 

길바닥에 온통 흩어져 뒹굴고 있는 은행을 밟는 걸음에 또 옹 또 오옹 내음 새 돈 내음새 돈 세는 냄새가 난다.

올해도 잊지 않고 또 왔네 그 냄새와 향기

은행 밟으며 돈 돈들 밟으며 민원도 많다는 그 냄새가 어째 자꾸 익숙하여지고

매년 어쩌다가 우연인 듯 며칠씩만 맡으니 고향 냄새같이 느껴진다.

그냥 가버리면 그리울 것 같은 냄새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 종로구
 

 

 

가을비 내리는 길바닥에 착 달라붙은 은행 낙엽들

온 계절을 흔들리며 살다가 노오랗게 떨어져 버리고

이제는 어디에든 바짝 눌어붙으려 하는가.

낯설면서 친근한듯한 냄새들이 사무실에 따라와 있길래

찾아보니 신발 바닥에 은행이 붙어왔다.

 

은행 잎들이 삭막한 공단지대 길을 덮어서

산중길 같은 운치에 온통 노오란 길이라

아쉬움 낭만도 한때인가

길바닥에 눌어붙는데도 애달프게도

빗자루에 사정없이 쓸려 나가고 있다.

 

은행나무가 생각나지 않는 곳에 오랫동안 살다가 파주에 이사 가서 보니 가로수에 은행나무가 많았다.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저 은행이 열리면 주워와서 구워 먹어야지 하고 기다리다가 가을이 익어 가는 어느 날, 혹시 지키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남들이 안 보는 시간을 이용하여 아내가 그 은행 열매를 한말이나 주워왔다.

그리고 은행열매에서 알을 추출하기 위하여 양동이에 넣어 발로 은행열매를 짓이겨서 물로 씻어내는 방법으로 껍질을 깠다. 그런데 은행열매에는 독성이 대단하다. 은행나무에 벌레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쪽 발부터 종아리 피부가 짓무르고 가려워서 결국 피부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던 추억이 있다.

나무에서 독한 목초액을 만들듯이 꽤나 순해 보이는 나무에도 독한 성분들이 많은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많고 각각  자기 지역의 나무가 가장 오래되었다고들 한다.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각 지역마다 10월 중순쯤에는 행사들도 많이 하는데 올해는 11월 중순인데도 아직 은행잎의 노란색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웅장한 나무로 가지 발달이 왕성하다.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문묘의 명륜당 경내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바닷가의 북동쪽 언덕 위에 서 있으며, 800여 년 전 홍수에 떠내려 온 것을 심었다고 전하여 온다.

정자나무임과 동시에 마을의 당산목이다.

 

 

  용문사 은행나무 / 양평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있는 은행나무 용문사의 창건 연대와 관련하여 나이를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649년(진덕여왕 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강릉시 주문진 장덕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는 이 나무에 많은 은행이 열렸는데, 열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자 이곳을 지나던 늙은 스님이 이 냄새를 싫어해 부적을 써서 붙였더니 그 후부터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키가 47미터에 이르며, 가슴 높이 둘레가 14미터로 한국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으며 7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용계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함양군 서하면 은행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주민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은행나무 고사제를 올린다. 행사에는 군수와 도의원을 비롯해 200여 명이 참석하여 은행나무에 고사를 지내고 풍물놀이와 은행나무 음악제, 달집태우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소통과 화합을 다진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은행나무를 리스트 하여 보았는데, 대부분이 천년 이상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400년 이상은 되었다고 보아도 상당히 많다.

 

01. 서울 문묘 은행나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02.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03.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04.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 인천 남동구 장수동

05.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 강원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06. 강릉 장덕리 은행나무 :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07.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 원주시
 

 

 

08.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 충남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09.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10.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11. 당진 면천 은행나무 : 충남 당진시 동문 1길

12.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 충북 괴산군 청안면

13.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14.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15.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 경북 구미시 옥성면 이곡

16.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17. 청도 대전리 은행나무 :경북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

18.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월곡 안길

19.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 경남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20.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21.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 울산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22.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23.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24.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 전남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은행나무의 노오란 잎이 바람에 날리면서 길바닥 구석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노라니

천년을 이어온 은행나무의 역사와 함께 그 나무 옆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조상님들의 삶이 그려진다.

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그 후손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아왔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무엇이 얼마나 달라져 왔을까.

또 천년이 지나갈 때도 저 은행나무가 살아서 천년 전의 오늘 이야기도 후세에 전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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