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53%까지 교통비를 환급해주는 'K-패스' 인기가 예상을 뛰어넘자 정부는 K-패스 사업에 276억원의 예비비를 긴급 수혈하기로 결정했다. 예산이 소진돼 환급 대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엔 올해보다 223% 증액된 K-패스 예산을 담았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K-패스 인기에 벌써부터 예산 부족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K-패스 사업을 위해 276억원의 예비비를 투입한다. 이를 위해 차관회의(11월7일)와 국무회의(11월12일)에서 '2024년도 일반회계 일반예비비 지출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예비비 수혈에 나선 건 올해 5월부터 시행 중인 K-패스 이용자가 당초 정부 예상보다 크게 증가하며 지원 예산이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해서다.
지난 5월부터 시행된 K-패스 사업은 대중교통 이용 촉진과 국민 교통비 부담 절감을 위해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을 대상으로 월 최대 60회까지 교통요금의 일정 비율(일반 20%, 청년 30%, 저소득층 53%)을 환급해주는 사업이다. 국비 50%, 지방비 50%(서울의 경우 국비 40%, 지방비 60%)가 재원으로 활용된다.
K-패스 사업은 시행 이후 큰 호응으로 올해 예산안 편성 당시 예측(연말 기준 185만명)한 가입자를 훌쩍 넘었다. 현재 시점에선 연말 258만4000명이 가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수도권 20~40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의 78.6%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돼있는 데다 많은 직장인들의 출퇴근 수요도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편성한 K-패스 사업 예산이 빠르게 소진됐다. 실제 9월 말 기준 올해 예산현액의 86.8%가 집행됐다. 이 추세라면 국비 기준 약 400억원의 예산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정부는 예산 전용(약 120억원)과 함께 예비비 276억원을 긴급 투입해 환급 대란 사태를 막기로 했다.
아울러 K-패스 사업이 지방예산과 매칭사업인 만큼 인천과 경기 등 K-패스 참여 지자체들도 연말까지 지방비를 추가로 확보해 차질 없는 환급을 지원하겠단 입장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예산 부족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 때 추산한 것보다 K-패스 가입자가 더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정부는 내년 K-패스 사업과 관련해 올해(735억원)보다 1640억원(223%) 늘어난 2375억원을 편성했다. 내년 예산안 편성 당시 올 연말 기준 K-패스 가입자가 246만3000명에 이를 것이란 추정을 바탕으로 산정된 예산이다.
하지만 실제 K-패스 가입자 증가세는 정부 예상보다 가파르다. 국토교통부는 연말 가입자가 약 2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내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2024년말 K-패스 이용자수는 국토교통부가 당초 예상한 규모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과소 예측된 이용자수에 기반해 편성된 내년도 예산안의 부족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어 예산안 규모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단 정부원안 처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안이 이제 올라간 상황에서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는 게 우선"이라며 "(내년에도) 증액 소요가 있을지, 없을지 등은 내년에 가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을 수 있으니 우선적으로는 정부원안의 예산을 잘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K-패스의 전신격인 알뜰교통카드 사업에서도 비슷한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알뜰교통카드는 대중교통 이용시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지급(최대 20%)하고 카드사가 추가할인을 제공(최대 10%)해 대중교통비를 최대 30% 절감할 수 있는 제도다.
당시엔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환급금 지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됐다. 실제 지난해 11월과 12월 서울과 대구 등 15개 시도는 약 98만명에게 당초 약속한 것보다 20억원 가량을 감액 지급했다. △서울(7억5000만원) △경기(8억원) △인천(2억1600만원) 등의 감액규모가 컸다.
지난해 지자체들이 알뜰교통카드 환급분을 일부 감액 지급한 건 세수부족으로 연말 사업비 확보에 실패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역대급' 세수 결손이 발생하자 지방정부에 보내야 할 지방교부세 중 7조2000억원을 줄였다. 올해도 29조6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데 따라 지방교부세를 당초보다 2조1000억원 줄여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는 지자체가 아닌 국비 부분이 모자랐지만 내년 이후엔 국비뿐 아니라 지자체 재원이 모자라 사업이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단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방정부가 쪼그라든 지갑 사정에 지출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K-패스 사업비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 K-패스 예산안 논의시 지방비 확보 여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