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몸 바쳐 어려운 사람 도우라고 유언 남겼다”
지난 18일 강서구 방화동 아파트 화재시 같은 동 주민들을 위해 1층부터 13층까지 맨발로 뛰어오르며 대피시킨 청년이 화제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한 청년이 목숨을 걸고 1층부터 13층까지 두 차례나 오르내리며 주민을 대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를 알린 사람은 6층에 살고 있던 우영일(23) 씨였다고 동아일보가 22일 보도했다.
서울 강서소방서에 따르면 18일 오전 6시 30분쯤 방화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주민 95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었다.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 고령자와 장애인이 살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영일 씨가 화재 당일 1층 복도에서 소방서와 통화하며 뛰어가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제공)
우 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중 타는 냄새를 맡았다. 창문을 열고 불이 난 현장을 발견한 우 씨는 오전 6시 45분쯤 자신이 사는 6층에서 14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우 씨는 “복도 안쪽에서 어르신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라며 “소방대원이 도착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우 씨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 주민에게서 물에 적신 수건을 받고서 다시 14층으로 향했다. 자세를 낮춘 채로 연기 속을 헤쳐 가던 우 씨는 복도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던 고령의 주민을 발견했다. 우 씨는 그를 아래층으로 끌어냈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에게 인계했다.
우 씨는 1층에서부터 13층까지 호수마다 문을 두드리며 “빨리 대피하세요”라고 외쳤다. 이러한 과정을 두 차례나 반복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아파트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우 씨는 아파트 주민이 모두 대피한 뒤에야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채 맨발로 뛰어다닌 걸 발견했다고 한다. 양손은 까맣게 재로 뒤덮여 있었고 입에선 검은 가래가 나왔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 A(61) 씨는 “젊은 총각이 ‘불났어요. 빨리 나오세요’라고 해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라고 동아일보에 밝혔다.
우 씨는 “연기가 자욱한 걸 보고 10분 정도 망설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라고 했다. 우 씨의 아버지는 간경변증으로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이 어려우면 한 몸 바쳐서 도와주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서소방서에 따르면 오전 6시 54분쯤 “타는 냄새가 나고 복도에 연기가 자욱하다”라는 신고가 소방에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인력 108명과 장비 30대를 동원해 오전 7시 49분즘 불을 완전히 껐다.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14층에 거주하는 주민은 “담뱃불을 붙이다가 불이 살충제에 옮겨서 붙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화재로 옆집에 거주하는 70대 여성이 대피 도중 연기를 흡입해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됐고 다행히 현재는 의식이 돌아왔다.
불이 난 아파트는 복도식이다. 복도에 창문이 설치돼 중앙에 설치된 방화문을 닫아놔야 다른 층으로 연기가 확산되지 않는 구조다. 아파트의 1층부터 15층까지 점검한 결과 모든 층의 방화문이 열려있었다. 불이 나면 연기 확산을 막아 대피시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