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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감귤과 밀감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10월23일 13시2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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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연말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마트에는 봄 여름 가을 비바람 태풍 해충을 거쳐온 과일들이 넘쳐나고 있다.

오렌지와 귤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과도 계절에 따라 아오리, 홍로, 감홍도 지나가고 가을에 맞게 시나노골드의 품종이 보이다가 이제는 저장성 좋은 부사가 단단한 과육과 단맛을 자랑하고 있다.

과일도 수입하여 들어오는 것이 많아지면서 식료품 마트에 가면 계절을 잊은 지도 오래긴 하지만 계절에 맞게 한철 쏟아져 나오는 과일을 무시할 수 없다.

 

오렌지는 다양한 종류가 많은데 오렌지를 잘 몰랐던 사람들조차도 요즘 마트에서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이 오렌지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오렌지라고 하면 비슷한 과일들의 통칭같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귤, 유자, 자몽, 레몬, 라임, 탱자 등등 모양이나 맛도 비슷한 과일들이 많고, 금귤(金橘)로 불리는 금감(金柑)이나 탱자를 제외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총칭한 것을 감귤이라 하여 학술어로는 Citrus라 한다. 귤은 재래 감귤을 상징하며 우리나라에서 계속 사용되던 말이다.

 

귤 나무는 넓은 뜻으로는 감귤류 전체를 의미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온주밀감을 가리키며, 중국 저장성의 온주(溫州)가 원산지인 품종이다.

이 온주밀감을 재개량한 것이 우리에게 친숙한 제주 밀감이다.

그래서 감귤 > 귤 > 밀감 > 제주 밀감으로 그 범위를 표현할 수 있다.

 

 

 제주 밀감 = 온라인 제주 귤 쇼핑몰
 

 

옛말에 '탱자는 고와도 개똥밭에 뒹굴고 유자는 얽어도 큰 상에 오른다.'라는 말이 있다. 마음 씀씀이와 비교되어 우리네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곧잘 하던 말이다. 탱자는 겉치레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볼품이 없었던데 비해 유자는 혼인대례상이나 잔칫상에 오르는 아주 고급 과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탱자를 영어로 표기할 때는 trifoliate orange 혹은 hardy orange로 우리가 부르는 일종의 오렌지다.

 

탱자와 비슷하게 생긴 라임도 있다. 라임(lime)은 신맛이 나는 귤 속 품종이며 덜 익은 열매를 수확하여 먹으므로 녹색이고 수확하지 않고 그냥 두면 노랗게 익는다. 강한 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레몬처럼 요리와 음료에 많이 사용된다.

얼핏 보면은 덜 익은 레몬같이 생겼지만 레몬보다 단맛이 적고 신맛이 강하다. 향도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멕시코 요리에서 특히 모히토에도 빼놓을 수 없는 재료로 멕시코에서 많은 라임을 생산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의외로 값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라임주스를 사용하는 집이 많기 때문에 모히토에서 텁텁한 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베트남의 음식점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인데, 식당 테이블마다 1접시씩 꼭 있다. 한국 식당에서 김치가 당연하게 나오는 것처럼 베트남 현지 식당에서는 라임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이걸 쌀국수 등 각종 음식 위에 즙을 짜서 뿌려 먹는다. 라임을 넣는 이유는 살균 효과뿐만 아니라 맛도 가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임나무의 잎도 요리 재료로 쓰인다. 쌀국수, 볶음면, 그린 카레 등 동남아 요리에 쓰이며 향이 강하다.

칵테일인 진 토닉, 쿠바 리브레 등의 중요한 재료이며 라임이 없으면 클래식 칵테일들 대부분이 없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라임 오렌지 나무를 친구 삼아 마음을 털어놓으며 함께 성장하는 제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브라질의 국민 작가 J.M. 바스콘셀로스(1920~1984)가 1968년 발표한 소설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학대받으며 자라는 어린 소년 제제가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들어 독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고, 현재까지 수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다.

그 줄거리를 간략하게 훑어본다.

 

​제제는 장난기 많은 아이로 자주 매를 맞으며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학하기도 한다.

반면에 제제는 착하고 어른스럽기도 하다. 실직한 아버지를 위해 구두닦이 일로 돈을 벌어 선물을 사주거나, 담임 선생님과 가난한 친구에게 선물을 준다.

밍기뉴라는 작은 라임 오렌지나무를 만난 제제는 그 나무와 친구가 되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밍기뉴는 제제의 기쁨, 슬픔, 아픔을 함께 나누며 소중한 존재다.

 

제제는 노래를 배우고 현실의 아픔을 잊게 되는데 악보를 파는 일을 도우면서 제제의 머릿속은 동심과 거리가 먼 성인가요로 가득 차게 된다.

제제는 포르투갈 출신의 나이 많은 뽀르뚜까 아저씨와의 만남에서 처음에는 좋지 않은 경험으로 편견과 적개심을 겪었지만 둘 사이에 우정이 새로이 탄생하게 된다. 뽀르뚜가 아저씨와의 깊어진 우정과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면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뽀르뚜까 아저씨와 밍기뉴를 잃게 되고 감정적인 충격과 스트레스에 휩싸이며 삶의 무기력함에 빠진다. 그러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으로 제제는 다시 삶의 힘을 찾게 된다.

 

제제는 고통과 상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사랑과 우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향한 생각에서 벗어나 삶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성인 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한 제제는 뽀르뚜까에게 보내는 감동적인 편지를 보낸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제제가 눈물과 웃음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라임나무 = 게티이미지
 

 

날씨가 추워지면 시골집의 방 안에서 선친이 좋아하고 드시던 과일이 밀감이다.

선친은 1950년대 초에 군대 생활할 때 제주도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었고 그때 접한 과일인 일명 미깡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명절 때에 시골집에 내려가면 선친은 매번 미깡을 말씀하셨고, 미깡 껍질을 반쯤 깐 예쁜 모양으로 제사상에 올리곤 하였다.

미깡이 아니라 밀감이라고 말씀드리니 나중에는 미일가암으로 길게 발음하시곤 하셨다.

 

미깡은 그 당시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던 용어다. 제주도에서 미깡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개량 귤인 온주밀감 품종이 일본을 거쳐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미깡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발음은 미깡이다.

예전 어르신은 일본에서 들여온 큼직큼직한 품종은 미깡이라고 부르고, 옛날의 조그마한 귤들은 줄 혹은 귤이라고 부른다. 현재 제주 땅에 있는 대부분의 귤은 미깡이라고 보면 된다.

 

귤을 영어로 뭐라 하지 Orange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오렌지의 용어는 좀 더 광범위하다.

귤은 영어로 Tangerine 아니면 Mandarin이라고 표현한다. 둘 다 귤류이기는 하지만 맛과 생김새에 차이가 있다.

Tangerine은 오렌지와 유사하게 과육이 단단하고 껍질이 두꺼우며 Mandarin 은 작은 크기로 단맛이 나며 껍질이 얇은 귤이다.

Clementine 도 있는데 주로 유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품종으로 껍질이 얇고 까기 쉬우며 작은 작은 사이즈가 특징인 귤이다.

 

귤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해왔으나 한반도 본토에서 기르기 힘들어, 제주도 정도를 제외하면 왕족이나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탐라지에 따르면 백제 문주왕 2년(476) 탐라국에서 지역 특산물로 귤을 바쳤다고 하며, 고려사에 고려 문종 6년(1052)에 탐라국에서 세금으로 받아오던 귤의 양을 늘린다는 부분이 있어 이때부터 귤을 진상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조 원년(1392)부터 공물 기록이 계속 나온다. 세종 8년(1426)에는 호조의 게시로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에 유자와 감자를 각 관서에 심게 했다고 한다. 세조실록 2권에는 '감귤은 종묘에 제사 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기록도 있어 당시 귤이 그만큼 귀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521년 충암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에 의하면 제주에 보배로운 것 중 하나는 귤이며, 그 종류는 아홉이나 되며, 금귤은 9월에, 유감과 동정귤은 10월 그믐에, 청귤은 다음 해 2월에 익는데 금귤과 유감은 열매가 조금 크고 감미가 짙고, 동정귤과 청귤은 신맛이 강하여 꿀과 식초를 합한 것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옛날 황제가 제사를 지낼 때 썼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선계의 맛’이라 극찬했으며 일반 백성은 맛보기도 힘들던 귀한 과일로 조선시대에는 남쪽에서 생산된 귤을 열매 수까지 세어가면서 공납용으로 걷어 가며 그로 인한 관리들의 횡포 때문에 농민들은 귤 나무를 말려 죽이기도 했고, 귤나무 묘목이 발견되면 아예 뽑아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원래의 다양하고 좋은 품종은 거의 없어지고, 1911년에 일본에서 수입한 온주 밀감이 오늘날 우리의 밀감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귤과 관련한 고사 성어로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귤이 회하(淮河)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는데 이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남귤북지(南橘北枳)'가 되고, 삼국지의 등장인물 육적은 모친을 위해 원술의 귤을 빼돌린 회귤유친의 일화가 유명하다.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신이 듣건대 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잎은 비슷하지만 과실의 맛과 향은 다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물과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귤과 탱자에 대한 많은 우화가 생긴 이야기다.

 

회귤유친 (懷橘遺親 : 품을 회, 귤 귤, 남길 유, 친할 친)은 귤을 품어 어버이께 남겨드린다. 줄여서 '회귤(懷橘)'이나 고사의 주인공인 육적의 이름을 붙여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고도 부른다.

정사 삼국지의 오서 육적전과 원나라 때 곽거경이 저술한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나온다.

육적은 삼국시대 오군 호현 화정 사람이다. 여섯 살 때 아버지 육강을 따라 구강에 있는 원술을 뵈러 갔는데, 원술은 손님인 육 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했다. 이때 육적은 품 안에 귤 세 개를 숨겼는데, 떠날 때 원술에게 인사를 드리려다 귤이 품에서 흘러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원술이 웃으며 말하기를 "육랑(陸郎)은 내 집에 손님으로 와 놓고 떠날 때에 어찌하여 주인의 귤을 감춰 가지고 가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이 대답하기를 "저희 어머님이 귤을 좋아하시는지라, 돌아가서 어머니께 맛보게 하려 그랬습니다." 하였다. 원술이 보건대 어린 나이에 모친을 생각하는 효성이 갸륵함에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는지 귤을 더 주었다고 한다. 육적은 자란 후 박학다식하여 천문과 역법에 통달하여 혼천도를 저술하고 역경에 주역을 달았다.

시를 지어 가로되, "효와 제는 모두 천성이니 인간 세상의 6살짜리 아이도 소매 속에 귤을 품어 어머니에게 남겨 깊으신 사랑에 보답하였네"

 

1601년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연시조 '조홍시가'와 유사한 이야기다.

밀감을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흘러가는 계절에 찬바람이 스치며 올해도 감귤도 밀감도 익어가면서 맛을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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