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감사에서 인공지능(AI) 교과서를 두고 거센 비판과 공방이 이어졌다. 특히, 해외에서도 실패한 전례가 많은 만큼 필수사항인지에 대한 논란과 구독료 등 필요 재정만 6조원에 달해 전방위적으로 의문부호가 붙는 상황이다.
이에 교육부는 도입을 두고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고 설명했지만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도입 반대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있다.
지난 10월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AI 교과서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했다. 백운희 정치하는 엄마들 운영위원은 “인공지능(AI) 교과서가 과연 정말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며 “프로토타입이라도 봤는지 궁금하다. 기존 사교육 업체에서 하는 문제 은행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화 교육도, 개인화 교육도 아니었던 만큼 학업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더욱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반대의견이 더욱 거세지며 국정감사에서 이뤄진 지적에 교육부는 한걸음 물러서는 상황이다.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설명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종합감사에서 “2025년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는 계획대로 도입하되 2026년 이후 (적용하는) 교과목은 조정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영어·수학·정보 교과에서 AI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많이 검증된 부분이 있다”라며 “충분히 내년도에 무리 없이 잘 적용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 부총리의 의견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외의 디지털 교과서 도입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 스웨덴의 경우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폐지했다. 실패 부작용을 겪은 스웨덴은 더불어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을 전면 중단했다. 또 종이 교과서 사용과 종이에 글을 쓰는 등 아날로그식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에 따르면 실제 스웨덴 초등학생들의 읽기 능력 점수가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저하됐다. 스웨덴 교육 당국이 아날로그식 교육을 강화한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는 AI 교과서를 두고 의무 사용이 아닌 ‘교육 자료’의 일환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조사처는 지난 20일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 과제’를 통해 해외 사례를 언급했다.
미국의 경우 ‘디지털교과서’의 사용 여부는 주 정부의 방침으로 결정되고, 영국의 경우는 전자출판물 형태의 교과서를 개발하는 사례가 있으나, 선정 여부는 학교와 교사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경우는 학교 이외의 그 어떤 기관이나 규정에도 교과서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또한 해외 어떤 국가에서도 일종의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인 AI 교과서를 ‘교과서’ 혹은 ‘교과용 도서’로서 도입한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AI 교과서 도입에 관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뿐만 아니라 AI 디지털 교과서의 4년간 총 구독료가 최소 1조9252억원에서 최대 6조156억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 재정부담 역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책 가격은 12월에 확정되지만 2025년도 예산 제출시한은 11월이기에 예산 확보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는 2025년에 한해 한시적으로 국가시책사업 특별교부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구독료는 이달 말 검정심사 합격 공고 이후 발행사(개발사)가 희망 가격 제시로 구체화 된다고 밝혔다. 12월 중 교육부 장관의 고시로 가격이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현재 구독료를 추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에 입법조사처는 추정한 AI 디지털교과서의 책당 평균 월 구독료를 5000원(중위)으로 설정했다. 이어 ±40%의 범위에서 재정부담 규모를 전망하기 위해 최소 3000원(저위), 최대 7000원(고위)의 월 구독료 소요액을 함께 추계했다.
입조처는 2025~2028년 구독료 재정소요를 학생 수를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최소 1조9252억원에서 최대 6조6156억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 최소 추계를 적용하더라도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시·도교육청이 구독료로만 지출해야 할 추가 재정부담이 큰 상황이다.
입조처는 지방교육재정부담의 증가는 시·도교육청 교육비특별회계 편성 자율성 제약 또는 지방교육 특수성 저해가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추가 재원 조달 방안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몰규정 삭제 △특별교부금 한시 특례 제도를 폐지 △국고 일반회계의 교육투자 유도 △한시적 특별교부금 활용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범주 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을 뿐 아니라 그 지위를 확보했다고 보고 있지만, 교과서 제도 법률주의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동 대통령령 규정에 따라 충분히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일부 간접적 논의만을 두고 명확히 입법자의 정책 결정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AI 교과서의 정책은 현재 서책형 중심 교과용 도서 체제보다 더 많은 교육 자원의 투입을 수반할 것으로 전망되고, 개인정보 보호법 제8조의2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요인 평가의 대상이 되는 등 학생의 헌법상 교육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끝으로 “대통령령이 아니라 국회의 입법 정책적 결정으로서 법률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우선 검토돼야 하고, 필요하다면 대통령령의 근거만으로 일약 추진되고 있는 정책과 제도에 관한 능동적인 감시와 견제로서 행정입법을 견인하는 법률의 개정이 검토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