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26일은 115년 전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탈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처단한 날이다.
이를 기념키 위해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제115주년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기념식'을 2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사)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개최된다고 25일 밝혔다.
기념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 식사, 기념사, '안중근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1879년 황해도 신천(信川) 출생의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 돌아와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돈의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안 의사는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 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그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에는 김기룡, 백규삼 등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 직 후 체포되는 안중근 의사
1909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주변의 군인들이 체포하려고 하자, 안중근 의사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일본 관리 또한 안 의사의 의로운 기개에 감복해 특별히 우대하기도 했다.
체포 직후 당당한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안중근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 장관은 "하얼빈 의거는 일제강점기, 겨레의 혼과 자긍심을 일깨운 희망의 외침이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세계 만방에 알린 커다란 함성이었다"면서 "국가보훈부는 안중근 의사님을 비롯해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헌신하셨던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