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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감칼럼] 도서관에서 일체유심조

칼럼니스트 신종근

등록일 2024년07월31일 12시4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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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40분.

까아만 양복,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한쪽 손에 가방을 다른 쪽 손에 차 키를 들고 차에 오른다.

출퇴근 왕복 130킬로 고속도로 자가운전에 매일 똑같은 패턴.

주말에는 골프채를 싣고 또 어디론가 떠난다.

앞집 아저씨다. 나도 나이가 든 탓인 가 할아버지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연세를 물어보니 42년생이라고 한다.

 

남들 장에 간다니까 거름 지고 나선다지만 아침 식사를 하고 나도 집을 나섰다.

매일매일 한곳으로 출근하다가 갈 곳이 여러 군데가 생겼다.

여러 군데라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퇴직자들이 많이 가는 곳이 산, 골프장, 수영장, 주민 복지 문화 센터, 도서관 등이라는데 나도 이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도서관으로 출근하여 이런저런 내 개인 업무 정리 겸 책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가 간다.

 

매일 아침의 회사 루틴이 사라지니 남에게 월급 받던 부담스러운 업무들은 사라지고, 자유인이 된 것인지 자연인이 된 것인 지 지금은 나 혼자서 노트북 작업하고 있으니 농촌 숲속에 사는 자연인이 아니라 도시에서 자연인이고 도서관 책으로 쌓인 숲이 놀이터다.

그래도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직장 생활의 패턴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앉아서 대학 노트를 꺼내 놓고 이런저런 메모를 한다.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알았고 궁금했던 것들은 그 원천까지 깊이 있게 찾아서 배워보고 내가 생각해도 잘못된 나의 행동들에 대한 반성도 노트에 기록하여 본다.

그동안 바빠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몰입하여 보니 예상외로 싫증 나거나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두게 되는 것들도 많아진다.

하기 싫어도 하고 보기 싫어도 만나야 했던 비즈니스가 달라졌다.

 

일체유심조는 한자어로 구성되어서 그 뜻이 곧바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밤에 갈증으로 꿀맛처럼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든 물이었다고, 우리의 행복이나 불행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지은 빨강 머리 앤 명작 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알아야 할 일이 잔뜩 있다는 건 멋지다. 만약, 우리가 뭐든 미리 다 알고 있다면 시시하지 않겠어요."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 
 

실제로 내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면서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끝없는 내공을 쌓아가고 마음을 다져가는 노력을 한다.

그러면서 인생 만사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려고 한다.

 

삼성그룹을 만든 이병철 회장은 세상에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과연 그 사람은 인생만사 마음먹기에 따라 다 되었을까.

그가 그랬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골프와 자식이다.

물론 그 외에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들이 꽤 많았겠지 그도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노력을 하면서 나아갔을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어령 교수와 재산에서 최고 갑부 반열에 있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돌아가신지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최고의 지식과 원하는 대로 재산을 가진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추구하는 것 중에 가장 우선순위 중에 하나이고, 대부분이 나름대로 잘 났다고 하여도 그들에 비하면 필부필녀일 수도 있다.

이어령 교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정주 창업자도 최상의 재능으로 젊은 나이부터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지만 55세를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마감해버렸다.

 

 

"아니! 자네들은 나를 존경하지 않았단 말이냐"

고등 3학년 때 토요일 늦게까지 집에도 안 보내주고 담임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고 "나를 존경하지 않았단 말이냐. 웃기네" 하며 우리들끼리 그 말을 흉내 내곤 했었다.

그때 선생님 연세보다 더 나이 들어 보니 그 말씀의 의미가 참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존경과 사랑을 같이 받지 못해서 아쉬움과 실패한 인생이라 했던 이어령 교수의 글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존경과 사랑은 얼마만큼의 크기이며 누구에게 어떻게 주고받는가.

일체유심조일까 그것도.

 

존경과 사랑이 인생살이에서 어떤 의미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에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하여 찾아본다.

 

 

 레프 톨스토이 
 

 

미카엘은 세묜의 첫인상을 보고 '저런 사람이 날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낙심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묜은 돌아와서 자신을 구해줬고, 그의 아내 마트료나도 무작정 화를 냈지만 세묜의 말을 듣고 화를 풀었다.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다.)

 

일을 하던 중 부자가 와서 오랫동안 신을 장화 타령을 했을 때, 미카엘은 세묜이나 마트료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천사가 부자 옆에 붙어 있는 걸 보았다. 즉, 이 부자는 자기가 오늘 죽는 걸 모른다.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힘이 없다.)

 

그리고 6년 전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 걱정했던 두 여자아이가 마음씨 좋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과 아이들의 양부모인 이웃 부부의 손에서 잘 자란 것을 본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사람은 당장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 가를 아는 힘이 없지만,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환경이나 상황은 이미 나타나 있는 것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는 것이다.

이미 나타난 현상을 보고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도 내가 더 노력하면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남아서 포기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고민하곤 한다.

 

내 마음은 내가 조정하는 것으로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말 그대로 일체유심조다.

단순한 논리다.

'Simple is the best.'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대부분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단순하게 살아라'의 저자 자이베르트가 전하는 행복 비법에 '더 단순하게 살아라'도 있다.

전 세계 1천만 부 이상이 팔린 그 책에서 주변 물건, 재정, 시간, 건강, 인간관계, 자신을 단순하게 하라고 강조하며 각각의 방법에 대하여 상세하게 제안하고 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 좋은 말씀과 책들도 많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살기 실천을 잘 하기 위한 방법론 적인 책들도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크다.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는 베스트셀러 작가 첸시밍이 설립한 프랭클린 독서클럽의 신작이다.

이 책에서는 외부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심리적 처방을 알려준다.

사소한 문제들을 자신의 삶에서 차단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자신에게 돌려주고, 내면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성가신 사람, 괴로운 일, 무의미한 SNS, 쓸모없는 정보를 당신의 세상에서 내보내면 깨끗하고, 밝고, 활기찬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말다가 사람 구경도 하다가 말다가 이런저런 잡생각에 하루가 간다.

도서관에서는 젊으나 늙으나 그들 각자의 시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이라 그런 지 유독 눈에 바로 들어오는 사람은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토익 영어 수학 책을 펴 놓은 학생들과 소방, 경찰, 공무원, 전기 설비 등의 각종 기사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몇몇 나이 든 사람들은 주택관리사와 문화관광해설사, 숲 해설가 자격증 시험 책을 들고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주 기도문의 청원문이다.

물론 그 시험과는 다른 시험이지만 시험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신경 바짝 쓰이게 한다.

도서관에 앉아서 시험 통과를 준비하는 그들을 보노라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험을 치르고 울고 웃는 시간들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수많은 참고서 책들 만큼이나 낡고 없어진 기억들이었다.

 

각자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대학 수험생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하여 고생의 대가를 감수하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어떤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하느냐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그게 인생살이의 여정인가.

 

오늘도 도서관에서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변명 같은 면도 있지만 일체유심조를 읊는다.

 

 

 

기업인 신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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