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6, 7, 8월이 여름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5, 6월이 여름이고 7, 8월은 여름이라 하기에는 너무 더운 한국이라 아예 극기 폭염 시즌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처럼 시간이 가면 그 더위도 사그라들겠지만 입추 말복도 지나고 처서가 다가와도 뜨거운 열기는 쉽게 사라지려고 하질 않는다. 처서에는 시원하여지고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고 전해왔는데 이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된듯하다.
지구 온난화로 요즘이 더 더워진 것인가 무척이나 덥다.
여름휴가 일정이 나오면 어디를 갈까 각자 계획들을 한다. 올해도 이미 여름휴가를 보낸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보냈고 역시 여름은 이래서 좋은 것이야 하는 글들도 보인다. 혹은 조금 조용한 시기에 철 늦은 휴가 일정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백만 인파 해운대 해수욕장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옛이야기가 된듯하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모든 시스템이 잘 준비되어 있는 호텔에서 호캉스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까운 곳에 대형 수영장이 있으면 사람들이 몰리고 야간 수영장도 인기가 좋고 한강유람선 불꽃 축제도 있고 목포와 부산 다대포의 바다분수 쇼와 호수 공원들마다 각종 나이트 분수 쇼들이 있다.
부산 해운대 송정 해숙욕장에 설치된 폴햄 파라솔 = 폴행 제공
이름 없는 곳이라도 어디든지 시원한 강바람 바닷바람이 부는 곳이나 산속에 가서 시원한 개울물에 발 담그고 책 읽고 있는 것도 아주 전통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속에 가서 물에 발 담그고 세월을 즐기고 있을 만큼 느긋한 여유는 없어지고 급격한 실업률 증가와 불안한 경제에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옛말이 되고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 시대에 살고 있다.
옛사람들은 여름날을 어떻게 시원하게 보냈을까
다산 정약용이 쓴 글 중에 '소서팔사(消署八事)' 즉,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에 대한 글이 있다.
1. 송단호시(松壇弧矢) :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2. 괴음추천(槐陰鞦遷) :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3. 허각투호(虛閣投壺) :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
4. 청점혁기(淸簟奕棋) : 시원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5. 서지상하(西池賞荷) : 서쪽 못에 핀 연꽃 감상
6. 동림청선(東林聽蟬) :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7. 우일석운(雨日射韻) : 비 오는 날 운자 뽑아 시 짓기
8. 월야탁족(月夜濯足) : 달밤에 물에 발 담그기
위의 여덟 가지에 추가하여 또 더위 식히는 여덟 가지라는 것도 있는데 그 시절에 맞게 상당히 소소한 것을 적어 놓고 있다.
옛날이라 지금과 비록 다르다고 하지만 다산 정약용의 방법은 상당히 낭만적이다.
시대가 달라졌으나 요즘은 어떻게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면 몇 개나 나올까.
여덟 가지에 또 여덟 가지가 더 나올말큼 많을까. 소소하게 하루에 한 개씩이라도 쓰다가 보면 여름이 다 지나갈까.
그리고 한여름은 휴식의 계절이라 생각하고 하나씩 실천하며 휴식을 취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여름에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시원한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먹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기 등도 포함될 듯하다.
무서운 공포나 귀신 나오는 납량특집 영화 보기도 있고 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나오는 동굴 체험 등이 있다.
올여름에도 한국민속촌에서는 옛날 분위기를 재현하는 납량특집 공포체험으로 ‘살귀옥’과 ‘혈안식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더울 때는 어떻게 하는지 본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에 가서 더운 몸 식히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고 있든가 에어컨 빵빵한 대형 마트에 가서 쇼핑하거나 카페나 커피숍에서 보내기도 한다.
에어컨이 없으면 선풍기 바람 쐬기가 있겠다.
야외용으로 볼일 보러 다니면서 사용이 가능한 허리 걸이 선풍이, 휴대용 선풍기(일명 손풍기), 목걸이 선풍기(일명 넥풍기) 등이 나오고 있다.
휴대용 선풍기에 변형된 스타일의 휴대용 에어컨도 나오고 있지만 일종의 냉풍기라고 볼 수 있으며 강력하고 편리한 휴대용 에어컨은 언제쯤 나올까 궁금하다.
자동차 쿨링매트나 자동차 냉장고처럼 간단하면서도 시원한 기능 동작을 하는 것도 있고 조끼 형태로 입으면 시원해지는 아이스 쿨 조끼도 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의 기본 설비는 에어컨이다.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는 에어컨의 발명가로 진정한 인류의 구원자, 인류의 대성인, 현대 문명의 숨은 건설자로 여름만 되면 각종 커뮤니티에 그를 찬양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인 캐리어 사의 창업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상당히 덥고 습하고 비가 수시로 내리는 열대 우림 기후라서 아무리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한들 사람이 장기 주거 가능한 환경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불리한 기후 조건이었는데 에어컨 덕분에 더위를 극복하고 손꼽히는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아열대, 열대 지방에 대도시가 들어서고 에어컨이 인류의 활동 반경을 넓히고 현대 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준 것이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동남아시아 같은 열대기후 국가들은 산업화는커녕 과거부터 존재하던 도시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발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점점 더 온도가 올라가는 날씨에 열대지방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온대지방에도 여름에 에어컨 없다면 어떻게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다.
에어컨이 없고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던 시절, 전통적인 방법으로 더위에는 모시와 삼베로 만든 옷이든 지 감물로 광목천을 물들인 갈옷도 만들어 입었다.
부채, 죽부인, 목침 등도 여름용 생활 도구 들인데 죽부인은 대나무로 만들어 냉 기능을 갖춘 침구류의 일종으로 대나무를 성글게 엮어 만든 죽공예품이다. 잠잘 때 필요한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이용하면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 도구이다.
예전에 여름이면 더위를 식혀주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전설의 고향’이 있었다. 지금은 종영이 되어 잊혀 가지만, 한때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여름의 더위를 잊기도 했다.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나 신화, 야사 등으로 생생한 재미와 교훈을 제공하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시골 마을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 입구에 아주 큰 저수지가 있었고 저수지 안 마을이라 해서 마을 이름도 새못안으로 새로운 못(저수지) 안(동네)이라는 뜻이다. 새못안이라는 지명은 다른 지방에도 몇 군데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한 여름에는 마을 어린이들이 그 저수지에서 수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특히 여름 방학에는 뜨거운 더위에 특별히 갈 곳도 없이 거의 대부분을 저수지와 함께 보내는데 그 큰 저수지를 횡단하면서 수영하기도 하고 낚시도 하였다.
먼 거리를 수영할 때는 개헤엄도 아니고 배영과 비슷한 자세로 하늘을 보고 물에 드러누워서 양쪽 손만 살랑살랑 물고기처럼 어디든 지 힘들지 않게 가기도 했다. 최근에 해보니 그 방법은 불가능하고 물에 당장 가라앉아 버렸다.
어릴 때에나 겁 없이 가능하였는지 물개처럼 물에서 노는 것에 익숙하였지만, 저수지 깊은 물에서는 위험한 면도 제법 많았고 가끔 익사 사고도 났었다.
여름이면 물 조심해야 된다고 언제 어디서나 포스터로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저수지 '마름'
우리가 헤엄쳐 다니는 저수지에는 말밤(표준어는 마름) 넝쿨들이 물에 가득하였는데 그 줄기 따라 물속으로 깊이 진흙땅까지 따라가서 캐어보면 마름모꼴의 뿔 달린 까만 열매가 나왔고 주로 구워 먹는데 밤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해서 물밤 또는 말밤이라고들 불렀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말밤을 캐어 와서 주전부리로 많이 먹었던 식물이다.
그런데 물속으로 헤엄쳐서 들어갈 때 물풀들의 줄기가 몸에 휘감기면 그 줄기를 풀거나 뜯어내어야 하는데 숨 쉬는 시간이 경과하거나 다리에 쥐가 나버리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된다. 흔하게 놀던 물놀이 하나하나도 지나보니 어쩌면 목숨을 걸었던 것 같은 것이라 씁쓸하기도 하다.
객지에 가서 자취하면서 지낸 고등학교 시절에 특히 한여름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대프리카라고 하는 대구의 여름은 그때에도 대단하여서 길에 나오면 불 바람이 얼굴에 화끈거리곤 하였다. 작은 자취방에 선풍기도 없이 몇 년을 보냈는데 그때 기준은 당연한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혼자 객지 생활을 했으므로 두어 달에 한 번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두 시간씩 걸리는 고향 집에 가서 부모님께서 농사지은 쌀과 반찬거리 등을 가져오곤 했다.
토요일 늦게 고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면 어두워진 밤이고 십여 분 정도는 걸어서 마을까지 비탈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고향 마을 입구에 저수지가 있었다. 한번은 한여름밤에 버스에서 내려서 고향마을로 올라가는데 땀이 많이 나고 더워서 캄캄한 밤에 저수지에 들어가서 혼자 목욕을 하였다.
캄캄한 시골 저수지에 별빛이 스치듯 일렁이는 까만 물빛과 주변 나무나 풀숲이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며 어디선가 들리는 동물이나 풀벌레 소리들은 저수지 바로 건너 공동묘지에서 춤을 추는 듯 무서웠다.
나는 그래도 낮에 보던 익숙한 곳이라는 마음으로 더위를 식히며 물에 들어갔는데 추워지며 갑자기 으스스 한 기분이 들고 더위가 싹 달아났다.
고향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조금 전에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어느 위치냐고 물으신다. 저수지 어디쯤이라고 하니 낮에 그곳에 사람이 익사하여 제사 지내고 야단났던 곳이라고 했다.
그 저수지는 들판의 가뭄을 해소하는 큰 생명수였지만 그 생명수에 생을 마친 사람들이 많았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조금 수정하면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이 된다.
지독하게 더운 날들도 하루하루 지나갈 것이고 그래도 올해의 여름에 새로운 발전이 있었기를 바란다.